“시대가 바뀌었나”…‘오름 불 놓기’ 제주들불축제 기로

입력 2023-03-13 15:34 수정 2023-03-13 15:51
2023 제주들불축제가 지난 9~13일까지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10일 마상마예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 놓기에선 사진 뒤로 보이는 새별오름 30만㎡를 불로 태운다. 제주시 제공

제주를 대표하는 제주들불축제가 산불 위험과 탄소 배출 문제 등이 맞물려 존폐 기로에 섰다.

제주도는 13일 오전 열린 실국장 도정 현안 회의에서 오영훈 제주지사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제주들불축제의 방향성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이날 밝혔다. 도는 주최 측인 제주시와 함께 개최 시기와 프로그램 등 운영 전반을 원점에서 들여다볼 방침이다.

제주들불축제는 봄이 오기 전 초지에 불을 놓아 방목지의 해충을 없애는 제주 전통 목축문화 방애에서 모티브를 얻어 1997년부터 축제로 열리고 있다.

축제 기간 말 등 목축이나 소원 빌기, 무형문화재 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이라이트는 3일째 저녁 이뤄지는 오름 불 놓기다. 새별오름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제주시는 축제기간 방문객 수가 평균 30만명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우수 축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들불축제는 건조한 3월 봄철에 개최되면서 타 지역 산불 발생 여부에 따라 축제가 축소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일 경남 합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정부가 산불경보 3단계(경계)를 발령하자 제주시가 축제 개최 당일 오름 불놓기와 불꽃쇼 등 불 관련 프로그램을 전격 취소했다.

축제 기간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면서 축제장은 4년만에 대면 개최로 열렸음에도 방문객 수가 제주시 추산 8만여명으로 당초 예상 규모인 37만~40만명을 훨씬 밑돌았다.

지난해에는 강원·경북지역 산불로 행사 전체가 취소됐다.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지난 2011년에는 구제역으로 제주들불축제는 첫 개최 이후 지난 26회 동안 총 8차례 일정이 변경됐다.

최근에는 기후 문제가 더해지며 설자리를 잃고 있다. 축제기간 오름 불놓기와 불꽃쇼에는 화약이 사용된다. 단순 볼거리를 위해 불을 놓아 탄소를 배출하는 축제 개최 방식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녹색당 제주도당 등 여러 시민단체에선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도·제주시 온라인 민원 게시판과 제주시청 공식 소셜미디어에도 기후위기와 생명 공존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축제라는 비판 글이 잇따르고 있다.

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름 불 놓기를 빼면 들불축제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효선 제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13일 “불 놓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며 “올해 축제가 어제 마무리된 만큼 추후 논의를 진행해 방향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