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990번째 맞이하는 부활절

입력 2023-03-13 14:19
송길원·청란교회 목사, 동서대학교 석좌교수(가족생태학), 하이패밀리 대표

‘2023년 부활절’과 ‘1990번째 맞이하는 부활절’은 차이가 있다. 둘은 ‘아에타스’(aetas)와 ‘템푸스’(tempus)로 구별된다. 라틴어 아에타스는 흘러온 시간이다. 잠깐 머물다 순식간에 사라져 갈 것이다. 이와 달리 템푸스는 기회가 된다. 내가 ‘붙잡는 시간’이다. ‘별의 순간’이다. 영원히 기억된다. 달맞이나 해맞이처럼 ‘부활절 맞이’를 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10년 뒤인 2033년에는 지구촌이 2000번째 맞이하는 부활절로 떠들썩하지는 않을까.

지금 양평은 부활절 맞이로 분주하다. 프로젝트명부터 흥미를 끈다. ‘1페이지의 책이 펼쳐진다’. 책이 책이 되려면 서가에 꽂히는 것이 기본이다. 적어도 100여 페이지는 넘어서야 책도 꼿꼿이 선다. 등판에 책 이름이 새겨지면서 제구실을 한다. 1페이지라면 그건 종이지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1페이지의 책이라고? 맞다. 무려 중등학교 국어 교과서 6258권을 펼쳐놓은 면적이다. 거기에 신·구약 성경 1753쪽, 150여만 자가 훈민정음체로 새겨진다.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하나님은 두 개의 돌판에 십계명을 새겼다. 하나님이 직접 손가락으로 새겨 넣으셨다. 주님은 땅바닥에다 글을 쓰셨다. 뭐라고 쓰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돌 없는 자가 쳐라’고 썼다고 했다. 누구는 그 여자 집에 다녀간 남자들의 이름을 죄다 적고 계셨단다. 그걸 보자마자 남자들이 돌을 버리고 슬슬 도망쳤다고. 영국식 유머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짐승의 가죽이나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잉크로 글을 적기도 했다. 1페이지의 성경은 종이나 가죽 돌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에 글자를 새겼다. 레이저가 불꽃을 튕기며 한 자 한 자 정교하게 다듬어냈다. 스테인리스를 깎아내는 소리는 아프고 절절했다. 욥의 울부짖음을 듣는 듯했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욥 19:23~24)

욥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며 새기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던가.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욥 19:25~27, 새번역)

나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 소망하는 게 하나 있었다. 1페이지의 성경 앞에서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는 일이었다.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불린 부활의 찬송가가 있다.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이 거대한 예술 작품이 선 곳은 수목 장지, ‘안데르센 메모리얼 파크’다. 어린아이들이 묻혀 있다. 언젠가 우리도 묻히게 될 것이다. 아직 무덤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드려져 본 일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소리칠 것이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마가복음의 이 짧은 구절이 인류 역사를 바꾼다.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선언이었다.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아침에는 불안이 흩문을 두드리고 저녁에는 절망이 문턱을 넘어오는 곳이 지옥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지옥문을 깨부수고 다시 부활의 소망으로 타오를 것이다.

이번 작품을 맡은 전병삼 작가는 한눈에 전체를 보기 어려운 대상을 한 화면에 ‘펼침(UNFOLD)’으로써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이렇게 피력했다. “우주를 체험하고 돌아온 우주 비행사들은 그 여행을 기점으로 삶이 극적으로 변합니다. 그 이유는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를 눈앞에서 조감한 경험이 마치 인간이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성경을 펼친 이 작품을 조망하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생각도 시선도 바뀔 것이다. 아등바등 아귀다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학습 현장이 된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성서한국과 선교한국의 큰 꿈을 꾸게 한다. 구도자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영성 관광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번 부활절에는 주한 외교사절들과 더불어 탈북민 다문화가족 암환우 장애인 등이 나와서 ‘나를 살린 말씀들’을 소개하게 된다.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대장금의 이영애, 새롭게 하소서의 고은아, 쎄시봉의 윤형주 등이 나서 제막식과 함께 축하와 찬양의 시간을 갖는다.

찾아오는 해외 관광객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성경을 듣게도 된다. 이미 해외에 널리 알려진 청란교회의 신비한 오르간 소리에 놀라기도 할 것이다. 머잖아 문화 인류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김장실 사장은 템플스테이에 맞먹는 기독교 영성 관광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번째 맞이하는 부활절이 벌써부터 특별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