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에 따라 13일(한국시간)부터 밤 10시30분에 개장하고 이튿날 오전 5시에 폐장한다. 해외와의 시차만 달라졌을 뿐 시장의 온도는 그대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파가 이번 주 뉴욕증시를 강하게 흔들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추세를 가늠할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오는 14일 공개된다.
1. SVB 파산 ‘쇼크’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주말’을 보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난 10일 SVB를 폐쇄하고 자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본사를 둔 SVB는 미국 정보기술(IT)의 화수분인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들과 거래하며 자금줄 역할을 했다. 파산 전까지 미국 내 16위 은행으로 평가됐다.
FDIC는 SVB의 자산·예금을 몰수한 뒤 새롭게 설립한 ‘산타클라라 예금보험국립은행’으로 이전했다. SVB의 자산은 2090억 달러, 예금은 1754억 달러로 집계됐다. SVB 고객들은 FDIC 보험 한도인 25만 달러 안에서 예금을 찾을 수 있다. 비보험 예금 고객들은 보험 한도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 FDIC의 공채증서를 발급받게 된다.
AP통신은 SVB에 대한 미국 금융 당국의 조치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싱턴뮤추얼은행의 폐쇄 이후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15년 전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에서 SVB 파산 사태는 자산시장 붕괴를 현실화할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찾아온 인플레이션과 탈세계화가 지난해 증권·채권 시장의 ‘거품 붕괴’를 불러왔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각국 금융가에서 숱하게 나왔다.
금융가는 SVB 파산을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가장 먼저 위기와 마주한 건 미래의 성장성을 현재의 손실과 맞바꿔 온 스타트업들인 탓이다. 이런 스타트업들과 거래한 SVB는 결국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미국 국채 위주의 매도가능증권(AFS)을 매각하면서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
SVB 지주사 SVB파이낸셜그룹은 지난 10일 마감된 나스닥거래소에서 106.04달러까지 60.41%(161.79달러)나 폭락했다. 나스닥거래소는 그 이튿날인 지난 11일 이 종목의 거래를 중단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는 SVB 파산 사태를 놓고 15년 전 금융위기를 떠올리고 있다. SVB 임원의 리먼브러더스 재직 이력은 주말 내내 유튜브와 SNS에서 언급됐다. 미국 폭스뉴스는 지난 12일 “SVB 최고행정책임자 조지프 젠틸레는 리먼브러더스 최고재무책임자 출신”이라며 “그는 리먼 파산을 1년 앞둔 2007년에 떠났다”고 보도했다.
더 심각한 건 시장을 파고든 공포다. SVB 파산 사태는 다른 은행에서도 예금이 빠져나가는 ‘뱅크런’ 사태를 불러오고, 소형 은행주와 실리콘밸리 IT주에 대한 과매도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투자자문사 웨일런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리처드 크리스토퍼 웨일런 의장은 12일 로이터통신에 “뉴욕증시에 당장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소형은행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치권은 SVB 파산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주말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재무부, 연준, FDIC가 SVB의 비보험 예금주를 보호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백악관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금융시장 개장을 수시간 앞두고 이런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와 SVB 파산 사태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겨울 폭풍 피해에 이어 SVB 사태까지 찾아온 여러 위기에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만 미국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은 현재까지 작게 예상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12일 자국 CBS방송에 출연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형은행 투자자들이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렇게 이뤄진 개혁은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SVB 파산 사태를 구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SVB는 영국 중국 인도를 포함한 11개국에 진출했다. 영국 180여개 IT기업은 지난 주말 자국 재무장관 제러미 헌트에게 서한을 보내 “월요일에 (은행과 증권시장이 개장하면)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정부의 개입을 요구했다. 영국 교육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링구미 관계자는 “회사 현금 85%가 SVB에 예치돼 있다. 우리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고 말했다.
세계 2위이자 미국 1위 재벌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SVB 인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 11일 트위터에서 SVB 인수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생각에 대해 열려 있다”고 답했다. SNS 플랫폼 트위터 CEO이기도 한 머스크는 에너지 플랫폼, SNS와 메신저, 온라인 결제망을 하나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연결하는 ‘슈퍼 앱’을 계획하고 있다.
2. 미국 2월 CPI 전망치 6.1%
미국 노동부는 오는 14일 밤 9시30분 2월 CPI를 발표한다. 연준은 지난해 내내 고용·물가 지표를 참고해 통화정책을 결정했다. 뉴욕증시는 매월 CPI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실업률을 확인할 때마다 강하게 요동쳤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주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상반기 통화정책을 보고하면서 “물가상승률을 2% 수준까지 내리기 위한 과정은 멀고 험난할 것”이라며 “예상보다 강한 경제 지표는 최종 금리 수준이 기존 전망치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3월 정례회의에서 ‘빅스텝’(0.5% 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고, 기준금리의 최종 수준이 6%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었다. 미국의 현행 기준금리는 4.5~4.75%다. 한 차례의 ‘빅스텝’만으로도 기준금리는 5~5.25%로 상승해 하단까지 5%대에 들어간다.
‘헤드라인 CPI’(전년 동월과 비교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로 정점을 찍고 7개월간 하락했다. 다만 물가상승의 둔화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의 최근 2개월 ‘헤드라인 CPI’ 상승률을 보면 지난해 12월은 6.5%, 지난 1월은 6.4%였다.
2월 ‘헤드라인 CPI’ 상승률도 5%대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2월 ‘헤드라인 CPI’ 상승률을 6.1%로 전망했다. 큰 변동성을 나타내는 에너지·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2월 근원 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5.5%로 제시됐다.
이렇게 느린 물가상승 둔화 속도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을 지탱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월스트리트 증권가 일각에서는 SVB 파산 사태를 계기로 높아진 경제 위기 우려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시장의 의견도 ‘빅스텝 불가론’ 쪽으로 기울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차기 금리 인상률 전망에서 한국시간으로 13일 오전 7시20분 현재 ‘빅스텝’을 택한 비율은 39.5%까지 내려갔다. 한때 70%를 넘겼던 빅스텝 전망 비율이 40% 밑으로 내려갔다. ‘베이비 스텝’(0.25% 금리 인상)을 지목한 비율은 60.5%로 상승했다.
3. 미국 서머타임 시작
애리조나주와 하와이주를 제외한 미국의 48개 주는 지난 12일 서머타임을 시작했다. 동·중·서부로 나뉜 미국 내 각 시간대에서 현지시간으로 오전 2시에 시계를 오전 3시로 1시간을 앞당겼다. 이번 주부터 뉴욕증시의 개·폐장, 연방정부별 지표·보고서 발표, FOMC 정례회의 성명 발표 시간은 한국에서 1시간씩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서머타임은 동절기보다 긴 하절기의 낮을 이용해 자원을 절약할 목적으로 표준시를 1시간 앞당기는 제도다. 미국의 경우 통상 3월 두 번째 일요일부터 11월 첫 번째 일요일까지 8개월간 서머타임을 적용한다. 하절기 일광 절약의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애리조나주, 태평양 한복판에 위치한 하와이주만 서머타임을 도입하지 않는다.
올해 서머타임은 11월 5일까지 적용된다. 다만 연간 2차례 시간을 바꾸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서머타임의 항구적 적용을 요구하는 의견이 미국에서 숱하게 제기됐다. 미국 공화당 소속 마크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서머타임의 항구적 적용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회기에 상원을 통과했지만 하원에서 처리되지 않아 폐기됐다.
하루 3분이면 충분한 월스트리트 산책. [3분 미국주식]은 서학 개미의 시선으로 뉴욕증시를 관찰합니다. 차트와 캔들이 알려주지 않는 상승과 하락의 원인을 추적하고, 하룻밤 사이에 주목을 받은 종목들을 소개합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