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측근 인간성 길러달라”…前비서실장 유서에는

입력 2023-03-13 06:24 수정 2023-03-13 09:5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에 마련된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형수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주변 측근들 진정성 있게 인간성을 길러주십시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고(故) 전형수(64)씨가 유서에서 이 대표를 향해 이같이 당부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전씨가 숨진 경기도 성남시 자택에서 발견된 노트 6쪽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주변 측근을 잘 관리하시라” “측근들의 인간성을 길러 달라” 등 이 대표에게 남긴 메시지가 담겼다고 13일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이를 두고 성남FC 불법후원금 의혹 수사 등에서 이 대표 측근들이 전씨에게 책임을 미뤄 전씨가 섭섭함을 느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전씨는 성남FC 불법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 ‘공범’으로 입건돼 지난해 12월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전씨가 성남시에서 행정기획국장을 지내던 2014, 2015년 성남FC가 네이버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이던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함께 네이버 관계자를 직접 만나 협상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형수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자택 앞에서 10일 오전 취재진이 취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씨는 또 유서에서 “저는 기본과 원칙에 맞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억울하게 연루된 걸 이 대표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라며 업무 처리의 정당성과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말한 ‘일’은 성남FC 후원금 의혹이나 대북 송금 의혹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씨는 지난 1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자신이 쌍방울그룹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 모친상에 이 대표를 대신해 ‘대리조문’을 갔다는 증언이 공개된 이후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유서 첫 문장을 “이 대표는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로 시작해 “대표님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성남시) 행정기획국장이어서 권한도 없었는데 피의자로 입건됐다”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일만 했다” 등 억울함을 여러 차례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지만 돈 없는 사람이 너무 어렵다” 등의 표현도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에 마련된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형수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씨는 9일 오후 6시45분쯤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유족 뜻에 따라 검찰이 경찰의 부검영장을 기각해 전씨의 발인은 예정대로 11일 오전 진행됐다. 성남시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은 유족 30여명만 참석한 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전씨의 유해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봉안당에 안치됐다.

한편 이 대표는 당 안팎에서 제기된 ‘사퇴론’을 일축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일 경기도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게(전씨 사망)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인가”라며 “아무리 비정한 정치라고 하지만 이 억울한 죽음들을 정치도구로 활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당하는 게 제 잘못인가. 주변을 먼지 털듯이 털고 주변의 주변까지 털어대니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견뎌내나”라며 “그야말로 광기다. 검찰의 이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