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8삼진보다 빛난 박세웅의 무사사구…‘피처’의 품격

입력 2023-03-12 18:29 수정 2023-03-12 19:51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체코의 맞대결에서 4회초 수비를 마친 한국 선발투수 박세웅이 더그아웃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마침내 거둔 첫 승의 배경엔 선발투수 박세웅의 무결점 투구가 있었다. 긴 이닝을 소화하며 삼진을 무더기로 잡아낸 것도 훌륭했지만, 그 이상 빛난 기록은 ‘무사사구’였다.

박세웅은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체코와의 WBC 본선 B조 1라운드 맞대결에서 선발 등판해 5회 2아웃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며 대표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투구였다. 시속 150㎞에 육박한 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 각도 큰 커브를 적절히 섞어 던지며 체코 타선을 틀어막았다. 5회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한 것을 제외하곤 안타를 아예 맞지 않았다. 아웃 카운트 14개 중 8개를 삼진으로 뺏으며 대표팀의 체면을 세웠다.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은 15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하나도 안 나왔다. 볼카운트가 3볼에 몰린 것도 3회와 4회 한 차례씩 있었던 풀카운트 승부가 유이했다. 체코 타자들이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제대로 참아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집어넣은 박세웅의 제구가 바탕이 됐다. 직전 경기 구원 등판해 소화했던 1.1이닝까지 합치면 이번 대회 도합 6이닝 동안 사사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일부 투수가 사사구를 남발하며 위기를 자초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지난 10일 일본전에서 6대 4로 뒤진 6회 말 무사 3루에서 등판한 김윤식은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늘리지 못하고 세 타자를 볼넷-사구-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판당했다. 이는 곧 일본의 5득점 ‘빅 이닝’으로 이어졌다.

다음 이닝 등판한 이의리는 한술 더 떴다. 1사 2, 3루에 마운드에 오르더니 첫 타자 곤도 겐스케를 볼넷으로 출루시켰고, 이어지는 오타니 쇼헤이 타석에선 폭투로 1점을 내주더니 두번째 볼넷을 헌납했다. 후속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삼진으로 돌려 세웠지만 풀카운트 끝에 아슬아슬하게 잡아낸 것이었고, 끝내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세 번째 볼넷으로 밀어내기 실점을 허용했다.

12일 체코전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뼈아팠다. 마운드 운용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제구가 되는 투수,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를 쓰겠다고 답했다. 리그 최고 투수 15명을 엄선했는데 세부 커맨드는 고사하고 기초적인 컨트롤 걱정을 해야 하는 고충이 그대로 묻어났다.

박세웅의 이날 투구는 그래서 더 눈부셨다. 볼카운트에서 지고 들어가지 않으니 부담 없이 유인구를 던질 수 있었고 그만큼 많은 삼진이 나왔다. 불필요한 출루를 허용하지 않자 더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불펜 소모는 줄어들었다. 투수를 왜 ‘쓰로어(Thrower)’가 아니라 ‘피처(Pitcher)’라고 부르는지 후배들에게 한 수 가르친 하루였다.

도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