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나의 신앙]원우현(13)사망 후 여기저기서 숨은 일화 드러났다.

입력 2023-03-12 17:33 수정 2023-03-13 07:06
여동생 원인희 권사의 빈소 예배에서 인사말하는 필자.

사랑하는 여동생 원인희 권사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특별한 간증이 있다.

생면부지의 중국 선교사가 빈소를 찾아 여동생이 중국 충칭 선교센터를 건립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나는 그 선교사에게 비화를 들으며 “바로 이게 성령이 하시는 표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여동생 원인희 권사는 “내 형제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마태복음 25장 말씀에 순종하면서 병고를 이겨내며 살았다.

거액의 헌금으로 중국 충칭 선교 센터와 교회 건축을 전담했는지 생전엔 아무도 몰랐다.

고인은 묵묵히 각국의 선교활동을 감당했다.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시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선교와 전도사역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연재에 정 목사의 간증을 통해 ’성령의 살아서 역사하시는 징표’를 나누고 선교에 활력을 얻고자 한다.

인간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여동생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003년 여동생 원인희 권사의 빈소는 성령의 강한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기적처럼 성령이 개입하신 중국 충칭 센터 건축기금 일화를 듣고 무릎을 치면서 “아멘”을 외친 기억이 난다.

정 목사에 따르면 여동생은 이곳 저곳 찾아 다니며 남몰래 후원하길 즐겨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살다 77년 나그네 길을 마감했다.

막내 여동생이 미국에서 보낸 사진 속 원인희 권사의 묘비에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이 눈에 띄었다.
정아브라함 목사(영정사진 왼쪽)가 필자 가족과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성경 말씀은 고인이 생전에 애송하던 구절이다.

고인이 병마와 싸우느라 힘든 하루하루, 주님과 소통하는 실마리로 삼던 구절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은 사실 남달리 건강한 고인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첫 아이 산후 조리의 부작용으로 일생 지병을 갖고 생활했다.

또 복음을 명약으로 복용하고 항상 기뻐하면서 살았다.

오로지 주님을 붙잡고 기도했다.

특별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일본 선교에 열정을 쏟았다.

모교 이화여고 62년 졸업 기도 모임도 일부 감당했다.

만성적 병환에도 자주 웃는 하느님의 딸로 기쁨을 나누는 데 인색함이 없었다.

지극히 작은 소자들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대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생활했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숨은 일화기 사망 후에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누구든지 사람은 죽은 후에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빈소에 들르는 사람, 발걸음 소리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도 고인에 대한 비밀스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생전에 어떤 사역을 했는지, 어떤 인품의 소유자였는지 조문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엇다.

원인희 권사의 선교 일화를 이 연재에 올리며 우리 주님께 영광 돌리고자 한다.

입관예배는 고인이 헌신적으로 섬겼던 여의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직접 집례했다.

이 목사가 당시 상주 부부와 부군 박헌서 회장, 필자 부부를 일일이 위로하고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빈소에 중국 선교사 한 분이 문상을 왔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만나자마자 즉석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청하는게 아닌가.

바로 2003년 중국 충칭에 센터와 한인교회를 세운 정아브라함 목사였다.

여동생이 중국 선교지에 얼마나 놀라운 기여를 했는지, 그의 배경 설명을 듣고 알게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운데 뒷모습)가 이 교회 성도 원인희 권사의 입관예배를 집례하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정 목사는 고인을 꼭 추모해야 한다면서 예배를 따로 인도했고 천국 입성을 기원했다.

그가 밝힌 중국 충칭 센터 건립 실화는 아래와 같다.

정 목사는 중국에서 교회 건물 전세를 구했다. 그런데 한인교회 용도로는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교회 임차가 너무 어려워 눈물로 철야기도를 했다.

그때 성령의 음성이 들려와 전세를 구하지 말고, 교회 건물을 신축하거나 구입하라고 명하셨다.

정 목사는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는 교회 건물을 건축하기로 목표를 세웠다고 선포했다.

교회 신축을 위해 합심해 기도하고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한데 일부 교인들이 빌리는 것도 어려운데, 교회 건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열악한 재정 능력으로 교회 건축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적지 않은 교인이 저항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그러나 정 목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을 붙잡고 매달렸다. 더 열정적으로 “교회를 주십시요”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바로 그 시간, 여동생 원인희 권사는 신장이식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생 원좌현 장로의 신장 기증을 받아 미국 샌디에이고 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냈다.

게다가 예상외로 금전적인 축복을 맛봤다.

수술 비용을 준비했는데, 수술 후 병원비를 정산하니 환율변동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이 남았다.

원 권사는 남동생의 신장이 자신에게 잘 맞고 부작용도 해소되며 주님께 마음으로 더 감사했다.

원래 원 권사의 기도 제목은 ’(주님을 위해 특별히 일본 선교사역과 광활한 중국 선교에) 건강을 회복한 저를 보내 주십시오’였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지인을 통해 정 목사의 중국 교회의 사정을 알게 됐다.

중국 충칭 선교센터와 교회 신축 기도 제목을 서로 나눴다.

이후 원 권사는 수술 후 남은 돈 미화 13만 달러를 헌금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됐다.

이름도 모르는 중국 선교지에 거액을 송금한 것이다. 아무 조건도 없었다.

한편. 하관식에는 일가 친척 뿐인게 보통이다.

그런데 여동생의 장지엔 이화여고 62학번 친구들이 십여 명 함께했다.

고교 동창들과의 석별의 정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친구 한옥주 플루티스트는 피아니스트 이방숙 올캐와 천국환송예배에서 연주했다.

늘 같이 중보기도를 하던 여고 동창 김은숙 권사의 고별사도 인상적이였다.

미국에서 김영수 김대훈이 보낸 고교 동문 우정의 화환, 아들을 앞세우고 (김덕신 정대철 집이라고 해라 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조의를 표한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전 5:16~18)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