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6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금융위기 다시 오나 ‘주목’

입력 2023-03-11 12:19
미국 캘리포니아주 SVB 본사 앞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16위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0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무너지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지 주목된다. 몇몇 은행들의 문제가 월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번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이날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미국 내 16번째 규모 은행인 SVB는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버티지 못해 파산했다. 미국에서 파산한 은행으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총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몇몇 매체들은 SVB 위기의 근본 원인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팽창한 특정 자산들의 거품이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꺼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83년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설립된 SVB는 이름 그대로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그중에서도 주로 신생 스타트업에 돈줄 역할을 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기술기업들에 몰린 데 힘입어 SVB의 총예금은 2021년에만 무려 86% 급증했다. 그러나 연준의 금리 인상이 기술기업들에 맨 먼저 타격을 가하면서 지난해부터 SVB로 유입되는 신규 자금줄이 거의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유 현금을 까먹은 상당수 기술기업이 예금액을 줄였을 가능성도 크다.

SVB는 고객들의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금리 인상의 충격파를 피하지 못했다. 이 은행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의 대부분이 미 국채여서 매입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했던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은 급락(금리는 급등)한 상태다.

예일대에서 금융위기 대응을 연구하는 스티븐 켈리는 “연준은 대놓고 금융 여건을 긴축하려고 했으며 은행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 “이는 가장 거품이 낀 시장에 연결된 은행들에서 시작된다”고 WSJ에 설명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 금융회사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특히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처럼 거품이 큰 분야에 많이 노출된 은행이 다음 타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부동산 대출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지역은행들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틀간 주가가 54% 폭락한 팩웨스트 뱅코프는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돼 있다고 WSJ은 보도했다. 역시 이틀간 29% 폭락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일부 부실 은행이 정리되더라도 2008년처럼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전면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아직은 우세하다. IT와 바이오 스타트업에 집중한 SVB처럼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쏠린 은행은 많지 않고, SVB처럼 초과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에만 투자해 보유한 은행은 별로 없다고 CNBC방송은 지적했다. 또 금리에 민감하게 돈을 움직이는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은 SVB와 달리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개인 소비자 비중이 높아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에 휘말릴 확률이 낮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JP모건 애널리스트 비베크 주네자는 고객 노트를 통해 “대형 은행들은 훨씬 더 많은 유동성을 갖고 있고, 다양한 사업 모델로 다각화돼 있으며, 위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