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기는 경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온 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습니다”
야구 국가대표팀 고참들이 마이크에 대고 밝혔던 각오는 9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호주전 패배로 짓밟혔다. 4강전이 열리는 미국으로 가겠다던 다짐 역시 웃음거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제 모든 건 10일 저녁 열릴 ‘숙적’ 일본과의 일전에 달렸다.
한국은 전날 참사로 벼랑 끝에 섰다. 6년간 준비해 온 WBC를 호주전 단 한 경기 패배로 망치기 직전까지 왔다. 일본전을 포함해 남은 세 경기에서 다 이겨도 실점 합계에 따라 8강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일본전에서 진다면 호주가 한 수 아래 중국 또는 체코에 패하기만을 바라는 처지가 된다.
호주전에서 잃은 것은 자존심뿐만이 아니었다. 투수진은 15명 중 절반 가까운 7명이 소모됐다. 10일 경기에서 투구 수 제한 규정에 따라 강제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건 전날 30구를 넘긴 고영표뿐이지만, 꼭 규정을 따지지 않아도 연투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타선에서도 빅리거 테이블 세터가 1안타 2볼넷에 그쳤고 베테랑 김현수 나성범은 무안타로 침묵했다. 3점 홈런을 때려낸 양의지를 제외하곤 찬스에서 믿고 맡길 해결사를 찾는 데 실패했다.
반대로 일본은 전날 중국과의 맞대결에서 8대 1로 여유롭게 승리를 거두며 자신들이 왜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지 여실히 입증했다. 압권은 선발 투수로 나서서 4이닝 동안 안타를 단 한 개만 허용한 세계구급 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이었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이도류’를 선보인 그는 타석에서도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하며 대승의 발판을 놨다.
대표팀에 절실한 건 투수들의 분발이다. 호주 마운드를 상대로도 응집력 문제를 노출한 타선이 이번 WBC 참가국을 통틀어 최상급이라 평가받는 일본 투수진으로부터 대량 득점을 뽑아낼 것이라 기대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회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다. 경기 결과가 같더라도 점수를 많이 내줄수록 8강 진출에 불리하기에 가급적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양 팀 선발 투수 간의 중량감 대결에선 일단 일본의 우위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95승을 거둔 다르빗슈 유는 지난해 16승 8패 평균자책점 3.10으로 빅리그 진출 이래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성적을 올렸다. 김광현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정상급 투수라지만 리그 수준차가 크다.
뒤가 없는 상황인 만큼 초반부터 계투진이 총동원될 가능성도 있다. 이튿날인 11일이 휴식일인 점도 총력전을 펴야 할 이유다. 구창모 이의리 등 연습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던 젊은 좌완들의 어깨가 특히 무겁다.
타선은 집중력이 관건이다. 한 이닝에 사사구 6개를 얻어내며 자멸하려는 호주 투수진을 상대해 안타 없이 땅볼과 삼진으로 물러나며 역전의 기회를 놓친 전날 경기 8회가 재현된다면 승리는 요원하다.
도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