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지난 영화판, 여성 인력 3년만에 바닥 찍었다

입력 2023-03-09 20:02
지난달 21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영화 산업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성 종사자와 여성 주연 영화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지난해 개봉작 202편을 분석한 ‘2022 한국 영화산업 성인지 결산’ 보고서를 8일 발표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지난해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천만 영화가 등장하는 등 회복세를 보였다.

그런데 팬데믹 가운데 개봉이 연기됐던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흥행한 건 주로 규모가 큰 상업영화였다. 실제 지난해 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는 2021년 17편에서 36편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저예산 및 독립·예술영화 개봉작은 190편으로 팬데믹 시기(207편)보다 오히려 줄었다.

영진위는 극장가 회복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 대작 영화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독립·예술영화의 자리는 더욱 축소된 것으로 분석했다.

2022년 실직개봉작의 핵심창작 인력 성비를 비교한 그래프다. 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영화의 핵심창작 인력 성비를 비교한 그래프다. 영화진흥위원회

문제는 대형 제작에서 여성 인력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 영화에서 여성 종사자의 비중은 16.9%로 전년도 23.4%보다 6.5%포인트 감소했다. 전체 한국 영화 산업에서 여성 인력이 26.0%를 차지하며 4명 중 1명 수준을 유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스크린 수는 제작비 30억 이상 영화로 쏠리면서 주연도 남성 영화로 집중됐다. 스크린 1500개 이상 영화 11편 중 여성 주연 영화는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한 편이었다. 스크린 수 1000개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헤어질 결심>, <정직한 후보2>, <앵커> 3편이 포함됐다. 남성 주연 영화는 33편이었다.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흥행 영화도 최근 5년 중 가장 적었다. 성별 구분이 어려운 애니메이션 2편을 제외한 지난해 흥행 상위 한국 영화 30편 중 테스트를 통과한 건 10편에 그쳤다.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대화하는데, 그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벡델 테스트의 세가지 기준을 만족시킨 영화가 10편 뿐이었다는 얘기다.

반면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가 포함된 영화는 다시 늘어났다. 지난해 흥행작 28편 중 11편이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됐는데, 11편 중 10편이 ‘대부분이 남성으로만 이뤄진 집단에서 구색 갖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 여성 캐릭터’를 그린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이후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가 꾸준히 감소해 최저 2편까지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해 “2022년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극장 회복세가 두드러졌으나, 성인지는 이슈마저 사라진 것 같은 한 해”라고 평가했다. 다만 “흥행이 보장된 대작 영화가 시장을 주도하며 성인지적 관점에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과도기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서혜원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