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 코파친스카야 “음악은 연주자 통해 길 찾는다”

입력 2023-03-09 17:04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파친스카야 ⓒMARCO BORGGREVE

“정경화와 정명훈의 열렬한 팬이자 클라라-주미 강과 김선욱 같은 신세대 연주자들도 좋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첫 내한이 취소돼 아쉬웠는데, 마침내 한국에서 연주하게 됐네요.”
‘바이올린계의 이단아’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46)가 오는 10~1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일 출신 잉고 메츠마허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2020년 열렬한 K팝 팬인 딸이 당시 연주에 동행할 계획이었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실망이 매우 컸다”고 덧붙였다.

코파친스카야는 동유럽의 집시풍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하고 현대적인 연주로 유명하다. 이런 그에게 죄르지 쿠르탁, 에사페카 살로넨, 페터 외트뵈시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작품을 헌정했다. 또한,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로부터 협연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음악은 연주자를 통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힘이 있다. 나는 음악을 무대로 올려 연주하고 소통함으로써 관객과 나누려고 한다”면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본능을 따라간다”고 밝혔다.

그는 구 소련 시절 몰도바에서 민속음악 연주자였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부모가 국내외 투어를 다니는 동안 그는 몰도바의 시골 조부모 집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공산주의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10년 가까지 해외 연주 투어 허가를 받지 못하는 등 그의 가족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소박한 농부였지만 소련의 정치적 선전을 절대 믿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1989년 구 소련이 해체될 때 12살이었던 그는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는 스위스 베른 국립음대에서 명교사 이고르 오짐을 사사하며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그가 늘 자신의 뿌리로 잊지 않고 있는 몰도바는 오늘날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 독립 문제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는 “전쟁은 가장 끔찍한 일이다. 이 전쟁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에 참담한 심정”이라며 “내 고국도 큰 위험에 처해 있다. 무기와 인명 피해가 아닌 평화적 협상으로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그가 이번에 협연곡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선택한 것도 최근 전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쇼스타코비치는 구 소련 시절 혹독한 검열로 핍박받았던 작곡가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작곡 이후 7년간 서랍 속에 간직했다가 독재자 스탈린 사후에야 꺼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소련에서 실질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작곡됐다. 정치적, 사회적, 정신적인 재앙 속에 있는 작곡가의 외로움 그리고 가학적인 폭군과 체제에 대한 신랄한 웃음이 담겨 있다”면서 “아마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이 생전에 연주되는 걸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