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잔소리하는 엄마, 반항하는 아이

입력 2023-03-09 14:07

일곱 살 남아인 K는 동생에게 심술을 부리고 특히 엄마에게 반항적이다.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 “엄마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라며 사춘기 아이처럼 대든다. 그러면서 동생을 점점 더 괴롭힌다. 자신이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인데도 동생이 갖고 놀면 일부러 빼앗고 약 올린다.

엄마는 K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왜 놀지도 않으면서 장남감을 동생에게 안 빌려주는 거니”라고 묻는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대답을 못 한다. 엄마의 잔소리는 길어진다. K는 “엄마는 맨날 동생 편만 들어”라며 더 심통이 나서 엄마에게 대든다. 어느 집이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찌 보면 엄마도 아이도 당연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엄마는 어째서 효과가 없는 질문을 반복할까를 먼저 살펴보자.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고 논리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늘 이유를 따지려 한다. 결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과학과 문명을 발달시키고 지구를 지배하는 사피엔스로 진화해오면서 인간의 유전자엔 ‘왜’라는 질문이 깊이 각인돼 있다. 그래서 감정이나 행동의 문제도 과학이나 수학처럼 이유와 원인을 따져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습성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어린 시절 사랑이 부족해 지금 이 모양이지’ ‘내가 이리 불안한 것은 엄마의 편애 때문이야’ 이런 식이다. 이런 논리가 차츰 사회의 통념처럼 됐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인과관계로 단정 짓기엔 섣부르며, 인간 행동이나 감정은 그렇게 하나의 결정론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보자. 아이도 “왜 동생에게 장난감을 빌려주지 않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답하거나 설명하기 힘들다. 행동은 논리가 아니니까. 그러니 아이는 대화를 하기보다는 더 심통을 부리고 짜증을 내며 ‘편애 타령’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성인도 누군가 ‘당신은 왜 이렇게 행동합니까’라고 물으면 몹시 당황하고 비난이나 위협으로 느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이 입장에서는 오죽하겠나.

사피엔스란 종은 ‘비교’라는 관계 구성에 익숙하다. 엄마들은 흔히 자신의 아이가 어리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과 비교해 나이가 많고 훨씬 성숙하길 기대한다. 심지어 동생과 관계에선 어른처럼 행동하길 기대한다. 그 나이에는 당연히 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바란다는 거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착시’가 일어난다.

형제간의 갈등에는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개입해야 한다면 일단 각각의 자녀와 따로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왜’를 따지기보다 일단 각자가 느끼는 현재 싸움상황에 대한 진상 파악이 먼저다. 각자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확연히 다르게 본다는 걸 알게 된다. 각자가 느끼는 현재 상황에서는 둘 다 ‘피해자’이므로 피해자의 편에서 감정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피해자라고 느끼는 상황에서는 엄마의 어떤 가르침도 아이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감을 통해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리면 문제 해결 단계로 들어간다.

먼저 아이와 해결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엄마의 ‘왜’라는 질문은 빼고. 질문을 구체적인 방법 찾기로 바꿔보자. “왜 동생에게 양보하지 않니” “대신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이에게 질문하자. 아이의 의견과 엄마의 조언이 비로소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 의견을 내어 타협한 후 “자, 그럼 장남감을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만 동생에게 빌려주자”라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 방법을 아이에게 제시한다. 아이는 스스로 참여해 낸 결론이므로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며 스스로 뿌듯해한다. 시간이 좀 걸려도 효과 없는 ‘왜’를 거듭하거나 ‘잔소리’를 100번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