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조 단위 쩐의 전쟁으로 치달은 가운데 카카오와 하이브 어느 쪽이 승기를 잡든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이 공개매수가를 높이며 에스엠 인수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당초 업계 예상보다 높아지고 있어서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에스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88% 오른 15만8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7일 카카오가 제시한 에스엠 주식 공개매수가 15만원을 웃도는 수치다. 하이브가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에스엠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에스엠 주가가 카카오의 공개매수 시작 이틀 만에 15만원을 넘기며 에스엠 인수전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앞서 12만원을 제시했던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로 끝난 만큼 카카오의 공개매수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현재 주가가 공개매수가를 웃돌 경우 주주들로서는 공개매수에 응할 이유가 사라진다.
하이브와 카카오 모두 안정적인 에스엠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 40% 보유를 목표로 삼았다. 양측이 제출한 공개매수설명서를 살펴보면 하이브는 소액주주 지분 25%, 카카오는 35%를 매수 예정 수량으로 잡았다. 현재 이들이 보유한 에스엠 지분은 각각 15.78%, 4.91%다.
하이브의 경우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의 지분 3.65%를 추가로 넘겨받더라도 아직 20% 이상의 지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카카오의 에스엠 공개매수 실시 이후 말을 아끼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하이브가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에스엠 인수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지면서 ‘승자의 저주’ 우려도 커졌다. 에스엠 주가가 양측이 제시한 인수가격보다 높게 거래되고 있어서다. 카카오는 주당 9만원대에 9.05% 지분을 확보하려다 실패하자, 예상 가격보다 66%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하이브 역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16~18만원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적인 비용 지불이 불가피하다.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에 성공했다면 7142억원을 지불하면 됐지만, 매수가가 주당 4만원만 올라가도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에스엠 몸값이 과도하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이브와 카카오의)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과연 에스엠을 40배, 50배 주고 사올만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더 비싼 값을 제시해야하는) 하이브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로 금호아시아나가 꼽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으로 사들였는데, 이 가운데 3조5000억원이 채무였다. 이후 금융위기까지 맞으며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자 대우건설을 포함해 기존 계열사까지 내놓아야 했다. 웅진그룹 역시 2007년 극동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5년 만에 웅진코웨이 등 핵심 계열사를 매각했다.
엔터 업종은 경기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수 대금을 치르기엔 양측 모두 부담이 크다. 카카오의 경우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에서 받은 투자금 대부분을 에스엠 인수에 쓰게 될 전망이다. 현금이 부족한 하이브는 카카오보다 높은 공개매수가를 제시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하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