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눈물…자립준비청년들 “진짜 필요한 건요”

입력 2023-03-08 10:21 수정 2023-03-08 17:53
삼성희망디딤돌 경남센터 멘토로 활동 중인 고병찬, 이정원, 장소라(왼쪽부터)가 최근 경남 창원 카페 온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창원=이한결 기자

멘토(Mentor). 국어사전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뭔가 대단한 이력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이 때문에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멘토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선뜻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경남 창원 삼성희망디딤돌 경남센터에서 만난 멘토들은 하나 같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겪은 걸 나누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멘티들도 “내 옆에 누군가 있는 거 같아 든든하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고병찬(28)씨는 지난해 9월부터 경남센터에서 생활하는 서민우(21·가명)씨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 경남센터가 대기업 취업을 원하는 서씨를 고씨에게 소개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이전에 한번도 봉사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해보니 내 경험을 들려주고 민우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되는 것 같더라”고 했다.

고씨는 축구를 하면서 민우씨와 친해졌다. 지금은 서씨는 멘토를 형이라고 부른다. 고씨는 간혹 카페에서 만나 서씨의 이야기를 들었고 자기소개서 쓰는 것을 도왔다. 그는 “민우가 경험한 모든 것을 쓰도록 했다. 그 경험이 민우에게 무기가 되게 하는 것이 자소서 쓰는 과정인 것 같다. 그 이야기가 정리돼야 면접도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자립준비청년 서민우(가명)씨.

지난달 전문대학 기계 관련 학과를 졸업한 서씨는 이제 본격적으로 취업 원서를 내고 있다. 서씨는 왜 대기업에 가고 싶냐는 물음에 “대기업에 가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복지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21년 경남센터 자립체험관에서 1개월 간 생활해본 뒤 지난해 초 햇빛이 잘 드는 4층 자립생활관에 입주했다.

서씨는 “두 살 때부터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혼자 산다는 게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체험을 하면서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6개월은 외로워서 힘들기도 했지만 차츰 적응됐다. 지금은 혼자 장도 보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다. 서씨에게 꿈을 물어봤다. 그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내가 아빠의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지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창원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로 일하던 사회복지사 장소라(35)씨는 2021년부터 경남센터 소개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김희라(23·가명)씨를 만나고 있다. 장씨는 “희라는 말수가 적어서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공방에 가서 향수를 만들고 함께 영화를 봤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김씨는 자신을 돌봐주던 시설 생활지도원인 ‘이모’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립준비청년 김희라(가명)씨.

김씨는 멘토 장씨를 만나면서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됐다. 지난달 졸업한 김씨는 지난 1일부터 사회복지시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의 취업 소식을 이날 전해들은 장씨는 “취업이 돼서 너무 좋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정직원으로 취업하면 일본 베트남 등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2021년 7월부터 경남센터 자립생활관에서 지내는 김씨는 국을 끓여서 밥을 해먹는다. 그는 “시설에서 항상 국물과 을 먹어서 그런지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콩나물국,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며 수줍게 웃었다. 혼자 지내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김씨는 “힘들 때가 많다. 외로워서…”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에게 자립을 위해 어떤 지원을 원하는지 물었다. 김씨는 “내 고민이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항상 있으면 좋겠다. 지치고 힘 때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자기 삶에 관심 갖는 친구 같은 어른, 멘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생활하는 삼성희망디딤돌은 2013년 삼성 임직원들의 기부로 시작한 삼성의 사회공헌(CSR) 활동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이 미래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거 공간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그동안 1만7000여명이 주거와 교육 혜택을 받았다.

창원=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