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 관리시설 건설을 위한 특별법(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국회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7년 후인 2030년부터 국내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이 순차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는데, 이 경우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8일 산업부에 따르면 이창양 장관은 지난 6일 전남지사와 부산·울산·경주시장, 울주·영광·울진·기장군수 등 8명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특별법 통과와 관련한 협조를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장관은 공문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선 고준위 방폐장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부지선정 절차와 유치지역 지원 방안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어 “특별법 제정은 박근혜·문재인정부에 걸쳐 약 6만1000명의 일반국민, 지역주민,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공론화의 결과”라며 “특별법 제정 지연 시 원전부지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기간도 장기화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오는 9일 충북 청주시의 한 호텔에서 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특별법 현황 및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되고 난 후의 핵연료 물질을 처리하는 시설인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국내 원자력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방사선 폐기물은 크게 고준위와 저준위로 나뉜다. 소모성 장비나 작업복 같이 소량의 방사선을 배출하는 폐기물이 저준위이고, 사용후 핵연료는 오랜 시간 방사선과 열을 방출하기에 고준위로 분류된다.
정부는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9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방사능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은 2009년 경북 경주에 들어섰지만, 고준위 폐기물은 아직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 저장시설은 2030년에 포화 상태에 이른다.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월성(2037년), 신월성(2042년) 원전도 곧 저장시설이 꽉 차게 될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용 후 핵연료를 모아둘 공간이 없으면 원전을 멈출 수 밖에 없다. 방폐장 건립에 실패하면, 이르면 2030년부터 에너지 대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폐물법은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민주당안과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의 정부안,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의 원전업계안 등 3건이 발의된 상태다. 세 법안 모두 국무총리실 산하에 독립 기구를 두고 공론화를 거쳐 예비 후보지를 정하고, 주민투표로 최종 부지를 확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제정되면 부지선정에 돌입해 20년 내 중간저장시설을 마련하고 이후 17년 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여야는 폐기물 저장 용량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원전 설계 수명만큼의 폐기물만 저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서 폐기물 저장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 대립이 이어지면서 방폐장 건립의 근거가 되는 특별법 통과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하루 빨리 특별법이 통과돼야 부지 선정 작업도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다”며 “국회와 지자체를 상대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점을 지속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