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46)씨 집에는 CD 플레이어가 없다. 그런데도 인기 아이돌 멤버의 음반이 여러 장 있다. 1집부터 최근 앨범까지 컬렉션을 갖춘 게 아니라 똑같은 음반이 여러 장 구비돼 있다. 중학생 자녀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인데,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가 나올 때까지 사 모으느라 그랬다.
권씨는 “포켓몬 빵의 띠부띠부 씰처럼 랜덤으로 들어있는 포토카드 때문에 앨범 한 번 나올 때마다 십만원 쓰는 것도 우스워졌다”며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라 지지해주지만, 기획사의 마케팅이나 상술이 아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K팝 팬덤 문화가 커지면서 음반과 관련한 기획사·음반사에 대한 불만도 증가하고 있다. 권씨 사례처럼 랜덤 포토카드 가운데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9~2022)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팬덤 마케팅 관련 소비자 불만 건수는 총 903건으로 집계됐다. 2019년 123건이었던 상담건수는 2020년 180건, 2021년 301건, 지난해 299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불만 상담 건수는 2019년보다 2.4배 늘었다.
불만 상담 건수가 증가한 것은 음반 발매량 자체가 급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앨범 판매 순위 등을 집계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국내 음반 판매량은 2019년 2509만장이었으나 2020년 4170만장, 2021년 5708만장, 지난해 7711만장으로 급증했다. 4년 동안 음반 판매 규모가 3.1배 늘었다.
음악 감상 방식이 스트리밍으로 바뀌면서 세계적으로 실물 음반 판매 규모는 줄고 있는 상황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원은 “음반에 포함된 굿즈를 수집하려는 팬심을 이용한 팬덤 마케팅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음악감상 방식 자체는 스트리밍이 대세다. 소비자원이 K팝 팬덤 활동에 소비를 해 본 경험이 있는 14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3.8%는 음악 감상 방법에 대해 ‘음원·동영상 스트리밍’이라고 답했다. CD를 실제 음악감상에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5.7%였다.
그럼에도 K팝 팬덤 활동을 위해 가장 많이 구매한 상품은 ‘음반’(77.8%)으로 조사됐다(중복응답). 음반을 구매하는 이유로는 ‘음반 수집’(75.9%)이 가장 많았지만 ‘굿즈 수집’(52.7%), ‘이벤트 응모’(25.4%)라는 응답도 많았다(중복응답).
음반 구매 이유 가운데 ‘랜덤 굿즈를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사례는 194명이었다. 이 가운데 동일 음반 구매 건수는 평균 4.1개였고, 많은 경우 90개까지 구매한 경우도 있었다. 이벤트 응모를 목적으로 구매한 소비자(102명)는 동일 음반을 평균 6.7개 구매했고, 최대 80개를 구매하기도 했다.
응답자들은 음반을 포함해 포토카드(55.6%), 응원도구(43.4%) 등의 상품을 평균 연 4.7회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구매금액은 ‘5만원 초과~10만원 이하’가 27.6%로 가장 많았다. ‘100만원 이상’ 지출한 응답도 2.8%였다.
소비자원이 최근 2년 내 발매된 음반 128개 상품을 조사한 결과 음반 한 개당 평균 7.8개의 굿즈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랜덤 굿즈는 평균 2.9개였고, 전체 굿즈 대비 37%를 차지했다. 가장 많은 종류의 포토카드가 있는 음반의 경우 총 78종을 제공하기도 했다. 음반 한 개에 랜덤으로 6종씩 들어있어서 모든 종류의 포토카드를 수집하려면 최소 13장을 구매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업자에게 굿즈와 음반의 분리 판매, 버려지는 음반에 대해 환경보호를 고려한 음반 발매를 권고하기로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