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발전기의 환풍구 바닥으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된 50대 입주민이 6억7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7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14민사부는 A씨와 그 가족이 아파트 관리업체 B사와 아파트입주자 대표자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B사와 대표자회의가 6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환풍구 가림막이 뜯어져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행인의 신고로 2018년 5월 오전 9시쯤 발전기 환풍구 8m 아래 지하 바닥에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수술을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마비로 보행과 의사소통이 어렵고 식사는 튜브를 통해서만 가능한 상황이다.
A씨는 발견 전날 밤 지인과 통화 등을 하는 과정에서 환풍구 가림막에 기대었다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A씨의 휴대전화에는 전날 밤 11시쯤 지인과 나눈 통화 내역과 문자메시지가 남아있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피해자 가족은 A씨의 과실을 50%로 추정해 손해배상금액을 산정한 뒤 아파트 시설을 관리하는 입주자 대표자회의와 위탁관리업체인 B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입주자 대표자회의와 B사는 책임을 극구 부인했다. 안전 점검을 지속적으로 했고, 환풍구 가림막에 일반인이 평소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단측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재판부는 해당 환풍구가 인도 뒤쪽 지상 주차장 옆에 있어 접근이 용이한 점, 환풍구 앞 잔디가 훼손되고 흙길이 다져져 있어 평소 통행이 잦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주목했다. 또 환풍구 가림막 앞에 차단시설이 없고 가림막이 낮아 어린아이들도 넘어지는 경우 가림막에 충격을 가할 수 있으며, 환풍구 안쪽에 추락 대비용 그물망이 없었던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고 이후 가림막 앞에 철제구조물이 추가로 설치된 점을 들어 사전에 이런 조치를 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구태환 변호사는 “아파트 발전기 환풍구처럼 우리 생활 주변에 흔한 시설물이 의외로 안전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며 “세심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