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 앞두고 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정부가 국내 일각의 비판 우려에도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내놓은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당초 대통령실과 외교부 일각에서 한·일 간 협상 속도를 늦추자는 ‘속도 조절론’을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은 ‘더는 문제 해결을 미루지 말고 협상에 속도를 내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6일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밝혔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비공개 자리에서 ‘지지율이 떨어져도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할 것’이라는 뜻을 종종 밝혔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번은 식사자리에서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은 하겠다’고 하더라”고 머니투데이에 전했다.
이날 발표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은 북한의 군사 위협, 글로벌 복합위기, 공급망 교란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 개선이 필수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해법 마련의 결단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국내 재단이 일본 피고기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여론 악화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어느 때든 나올 수밖에 없기에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정치·안보적 손익 측면에서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일본 정부가 오는 6월을 목표로 하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 국면 이후로 협상 타결을 미뤄야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조속한 매듭’을 재차 강조하면서 협상은 다시 급물살을 탔다. 특히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한·일 간 협상 타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여론 추이를 지켜보면서도, 이번 협상에 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 측면이 있었음을 부각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개혁과 같은, 지도자로서의 결단”이라며 “지도자는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실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이 여론 악화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대통령실 내부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한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일관계 개선 여론도 상당하다”며 “문재인 전임 정권은 ‘반일 몰이’로 정치를 위해 외교를 활용했다고 본다”고 매체에 말했다.
양금덕 할머니 "동냥 같은 돈 안 받아"…생존 피해자 3명 모두 반대
대통령실의 기대와 달리 반발 여론은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해 있는 징용 피해자 3명은 모두 정부 해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양 할머니는 광주에서 이날 열린 회견에 직접 참석해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하는 배상금은) 안 받으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지원단체와 대리인단도 반발하고 있다. 일본제철과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징용 피해자를 지원해온 민족문제연구소와 법률대리인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저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오늘의 굴욕적인 해법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광주에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대한민국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킨 ‘사법 주권의 포기’이자 자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이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 및 피해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 진영이 요구해온 피고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재원 기여는 일본의 완강한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다. 재단은 향후 확정판결 원고를 일일이 만나 해법을 설명하고 판결금 수령에 대한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 등에서 전날 외교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문’에 대해 직접 언급한다. 이 자리에서 한·일 양국 외교부가 발표한 내용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육성으로 국민에게 설명할 계획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