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고물가 행진이 잡히지 않는 양상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8%로 여전히 높은 수치다. 정부가 최근 식품 물가 잡기에 직접 나서면서 소주·고추장·생수 등 가격이 동결됐으나 이를 물가 안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이는 드물다. 식품 가격 인상이 ‘유예’ 됐을 뿐 언제든 ‘인상 러시’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2개 주요 식품업체 대표와 ‘물가안정을 위한 식품업계 간담회’를 가진 뒤 가격 인상 추세가 누그러졌다. 식품기업들이 예고했거나 예견됐던 가격 인상을 철회하면서다. 당장 다음 달 주세 인상으로 ‘소주 가격 60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주류업계는 “당분간 가격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주요 식품기업들도 가격 인상 예고 철회에 동참했다. CJ제일제당은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고추장, 조미료, 면류 등 제품 가격을 10% 안팎 올리기로 했으나 ‘없던 일’로 되돌렸다. 풀무원샘물도 생수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원가·비용 부담은 여전하지만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초부터 이어졌던 식품 가격 인상 러시가 멈춰서면서 당장 물가 인상 추세는 주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 기류를 드라마틱하게 떨어뜨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1~2월에 음료·생수·제과·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일부 인상됐다. 출고가격이 오른 것이라 유통채널에서 소비자 가격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차가 발생한다. 재고 제품이 판매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가격 인상 뒤 3개월 정도 지나야 물가 상승이 체감된다.
일부 품목에서는 시장 점유율 1~2위 제품이 이미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물가 상승 저지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를테면 생수의 경우 시장 점유율 1~2위 브랜드인 제주삼다수와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의 가격은 이미 올랐다.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은 풀무원샘물 등의 생수가격 동결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식품 가격인상 요인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게 문제다. 글로벌 시장의 원자재 가격 상승, 고환율, 고금리,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의 제반 요건이 해소되지 않는 한 식품 가격은 언제든 오를 수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1~2분기 성적표가 가격 인상이나 동결의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수익성 악화는 주주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매출·영업이익 실적이 떨어지면 가격을 올릴 명분이 생긴다. 실적이 좋다면 가격 인상 동력은 떨어진다.
외부 요인에 따른 가격 동결은 기업의 투자를 억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규제까지 더해지면 기업의 투자심리 또한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인상 억제가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투자를 위축시키고 수익성을 악화해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제반 여건이 좋아지지 않는 한 상반기 이후에는 가격 인상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