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업장에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는 대신 장기휴가 등을 통해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계획이지만 노동계는 과로를 조장하는 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근로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52시간제를 도입했으나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며 “노동자의 삶의 질 제고와 기업의 혁신·성장을 지원하는 법·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현행 ‘1주일에 52시간(기본 40시간+최대 12시간)’ 단위로 관리되는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노사 합의하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월 단위’로 관리한다면 4주를 모두 한 단위로 통합해 ‘1개월에 208시간’의 한도가 설정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최대 주 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현재 주 단위에 한정된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등까지 확대해 산업 현장의 선택권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근무일간 11시간 휴식’과 ‘휴식 없이 주 64시간 상한’ 선택권을 제시했다. 근무일간 11시간 휴식을 부여하면 주에 69시간, 휴식이 없다면 주64시간을 상한으로 두겠다는 것이다. 또 연장노동시간을 적립해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안이 만성적 과로를 조장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노동을 5일 연속으로 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노사 당사자의 선택권이라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방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의 이익과 노동자 통제를 강화해 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휴식권 조치에는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장과 잔업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도 “노동자의 선택권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장시간 집중노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휴식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개편방안”이라며 “노동부는 더이상 노동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정부 개편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장기휴가안을 놓고 근로자들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지적과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란 질타가 이어졌다.
이들은 “공무원들이 중소기업에서 1년만 일해봐도 이런 대책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 “있는 휴가도 못쓰는 곳이 태반” “하루 연차도 눈치 보고 쓴다. 주말을 끼고 3일 쉬는 것도 눈치 없다고 욕 듣는 게 현실” “육아휴직도 마음 편히 못 쓰는 마당”이라고 성토했다. 또 “장기휴가 다녀오면 책상이 사라져 있을 것” “장기휴가가 아니라 영구휴가가 맞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정부는 법 개정안을 이날 입법 예고했다. 다만 법제화를 위해선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정부는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