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전 검사가 아들의 학교폭력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문제로 낙마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검사 출신으로는 첫 번째 낙마로 보인다. 정 전 검사의 아들은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때에 동급생 친구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좌파 빨갱이’ ‘더러우니까 꺼져라’ 등 폭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소 친구들에게 “검사는 뇌물 받는 직업이고 판사랑 친해서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피해 학생이 결국 학교폭력으로 신고했고, 정 전 검사의 아들은 학교폭력에 대한 처분 중에서 ‘퇴학’ 다음으로 엄중한 ‘전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정 전 검사와 아들은 ‘전학’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심판은 물론 집행정지신청, 행정소송까지 제기했고,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결국, 학교폭력에 대한 처분으로 ‘전학’을 규정한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제기(왜 이 쟁송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하는 것을 제외하고 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 사이 정 전 검사의 아들은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고, 피해 학생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정순신 사태에 대해 대통령실, 법무부장관, 경찰청장 모두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10개월 동안 익히 보아왔던 모습인지라 새로울 것도 없다. 이들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겠으나, 설사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런 무능이 책임회피가 될 일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혹시 ‘검찰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래도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설마 대놓고 하지는 못하리라는 일말의 기대도 했다. 그런데, 이젠 검사 출신이 안 들어간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대통령실, 감사원, 국정원, 금융감독원,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 정부 요직을 검사 출신이 독차지했다.
검사 출신이 정부 요직을 맡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검사까지 될 정도면 학습면에서 우수한 인재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지배하는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한 검사 출신은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 수평적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검사 출신이 정부 요직의 수장이 된다면 복잡다단한 현안을 협상과 타협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지시나 의도를 실행하는 식으로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태도로 어떻게 다양성이 충만한 이 나라를 운영할 수 있겠는가.
또 검사 출신을 요직에 기용하는 인사는 전 정권을 흠집 내고 정적을 제거하는 데 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협치를 통해 복합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켜달라는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는 없다.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의 한 구절처럼 이제 부디 ‘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하면 어떨까.
“신기한 계책은 천문을 꿰뚫고/묘한 계산은 지리에 통달했네/싸움에 이겨 공 이미 높으니/족함을 알고 그만두길 바라겠소.”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