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부닥친 탄소중립…유럽 내연기관차 퇴출 ‘급제동’

입력 2023-03-05 16:57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자동차 강국들이 강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2035년에 맞춰졌던 유럽의 내연기관차 퇴출 시계도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EU 이사회는 6~13일 사이에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관련 법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사회 의장국인 스웨덴의 다니엘 홀름베리 대변인은 지난 3일(현지시간) 관련 투표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U 회원국은 지난해 10월에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이를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EU 회원국들이 반대 입장에 섰다. 선봉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 ‘전통의 내연기관차 강자’들이 즐비한 독일이 있다. 독일은 탄소 배출량이 적은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는 예외로 인정해 달라는 입장이다. 볼커 비싱 독일 교통장관은 “구속력 있는 법안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표결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럽국가 정부는 내연기관 퇴출 계획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탄소중립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들은 내연기관 퇴출 계획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잇달아 내고 있다. 이탈리아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가 ‘탄소배출 제로(0)’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도 EU 이사회 표결에 반대하거나 기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자동차 생태계가 전기차 중심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국의 자동차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전기차 대전환’을 가장 강력히 외친 건 유럽이지만 가장 빠르게 이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건 중국이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고용 위기도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는 유럽에서 직원 32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독일 폭스바겐은 2021년 3월부터 올해까지 최대 5000명 감원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 르노는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약 2000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내연기관차 퇴출은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유럽인민당(EPP)은 “내연기관차 퇴출은 신차 가격 인상, 일자리 감축, 유럽의 핵심 산업 쇠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일부 유럽국가의 반발로 인해 공격적으로 기후변화에 맞서려던 유럽의 야심찬 의제가 위태로워졌다”고 보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