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모차르트 해석자’ 아담 피셔 “음악으로 누군가 설득할 수 있다면…”

입력 2023-03-03 12:00
지휘자 아담 피셔. (c) I.A.M

“모차르트는 인간의 감정을 음악에 담기 시작한 작곡가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 그리고 질투와 사랑 등. 나는 아직도 모차르트보다 인간의 감정을 더 잘 담아낸 작곡가를 알지 못합니다.”

‘최고의 모차르트·하이든 해석자’로 평가받는 헝가리 출신 명지휘자 아담 피셔(74)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오는 9일 롯데콘서트홀,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1일 경기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을 여는 피셔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모차르트에 대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만의 깊은 음악적 친밀감과 이해력을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의 영혼과 가장 가까운 오케스트라로 불린다. 단체의 시작부터 모차르트 사후 부인 콘스탄체와 두 아들을 지원하기 위해 1841년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창단된 대성당음악협회 및 모차르테움(모차르트 재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상주 오케스트라이자 세계적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의 주축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모차르트 연주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c)Nancy Horowitz

동생 이반 피셔와 함께 ‘형제 마에스트로’로 유명한 피셔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자주 호흡을 맞춘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바르토크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한 그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명교수 한스 스바로브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71년 이탈리아 귀도 칸텔리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유럽의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 경력을 쌓았으며 수많은 오케스트라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그가 1998년부터 상임 지휘자로 활동한 덴마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과 베토벤 교향곡 전곡은 각종 상을 수상한 명반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198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두 국가 출신 연주자들로 ‘오스트리아-헝가리 하이든 오케스트라’를 만든 뒤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서 하이든 페스티벌을 열고 있으며 1989년 독일 카셀에 말러 축제를 만들었다. 그는 “한국에는 내가 모차르트와 하이든 전문가로만 알려져 있는지 몰라도, 나는 말러와 바그너의 음악을 자주 연주하는 지휘자이기도 하다”면서도 “나는 말러를 연주할 때, 말러의 음악 안에서 모차르트를 발견한다. 또 바그너를 지휘할 때는 그 안에서 하이든을 찾게 된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가장 오리지널한 교향곡의 시초다.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굳건히 살아있다”고 피력했다.

이번 내한 공연 역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35·38·40·41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3·5번을 들려줄 예정이며 레이 첸이 협연자로 나선다. 피셔는 “이번 공연에선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고 사랑을 많이 받는 작품들을 연주하게 된다. 특히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단조로 작곡한 몇 안 되는 곡인데, 전설적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50살 이하라면 이 곡은 지휘할 생각도 말라’고 했었다”면서 “내가 50세 이전에 이 곡을 지휘할 때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매우 부족했다. 이 곡은 마치 기적으로 가득한 인생의 경험과 그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c)John+Mac

한편 그는 핀란드 헬싱키 인권위원회 위원을 20년 넘게 역임할 정도로 평소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조국인 헝가리가 2010년 빅토르 오르반 총리 집권 이후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급격히 우경화되자 항의의 뜻으로 헝가리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사임했다.

그는 “음악가들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이든이 ‘내 언어는 전 세계가 이해하지’라고 했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음악가들은 국가주의에 반대해야 하며 인종차별에 맞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의 나라에서 억지로 쫒겨나 난민이 되었으면 그들을 돕기 위해 음악가가 앞장서야 한다”며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력한 정치 권력 앞에서 예술이 무력하다고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 나의 나약함을 시시때때로 느낀다. 하지만 내가 음악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해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