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킹조직이 지난해 9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을 해킹해 ‘대북 전단’ 전단 살포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코로나19 유입 원인으로 대북 전단을 지목하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한 지 한 달 만에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3일 유상범·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9월 북한 해킹조직이 대북 전단 관련 국내 탈북민 지원단체를 해킹한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했다. 이 해킹조직은 전단 살포 일정과 장소, 단체 관계자 사진 등이 담긴 자료를 훔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은 북한이 이 자료를 토대로 단체 관계자에 대한 물리적인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다행히 2차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북한 해킹조직 공격을 받은 것은 대표적인 대북 전단 살포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9월 단체 홈페이지가 이틀 동안 다운되는 등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국정원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9월과 11월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이 각각 2차례, 1차례 있었다”며 “지난달 24일에도 홈페이지가 3시간 가까이 먹통이 됐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하도 해킹 공격을 많이 받아 국정원 측에 ‘내 이메일을 자유롭게 들여다봐도 된다’고 말했다”며 “오죽하면 이메일 비밀번호를 스물두 자리로 설정했겠나”라고 토로했다.
북한은 대북 전단에 극도록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대북 전단이 외부세계를 알 수 없는 북한 주민과 북한군 사병들에게 내부 체제 비판의 싹을 키워준다고 판단해서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대북 전단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북한 최고지도부 사이에 팽배해 있다.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해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전선 가까운 지역이 (코로나19) 초기 발생지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우려하고 남조선 것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며 “우리가 색다른 물건짝들을 악성 비루스(바이러스) 유입 매개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색다른 물건짝’인 대북 전단을 통해 북측에 코로나19가 최초로 유입됐다는 의미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에 크게 반발해 무력시위를 벌이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2020년 5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만을 표시하며 그해 6월 9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을 포함한 4개 통신선(연락사무소·정상직통전화·군통신선·기계실 시험통신선)을 일제히 차단했다.
이어 일주일 뒤인 6월 16일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철거하며 남북 관계를 전례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우리 영내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