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바이오벤처 A사는 최근 경기도 판교에 있던 사무실을 정리했다. 그 대신 연구소가 있는 천안 오송 사무실을 함께 쓰기로 했다. 투자를 받지 못해 사무실 임대 비용이라도 줄이기로 해서다. 판교로 출퇴근을 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오송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A사에 다니는 직원은 오송으로 주거지를 옮길지, 퇴사할지 고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지만, 윤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 바이오 초기 투자 규모는 5년 만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비중으로 따져보면 4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4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VC가 바이오와 의료 분야에 새롭게 투자한 규모는 1조1058억원으로 2021년 1조6770억원보다 34%나 줄어들었다. 인구 구조 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바이오 투자는 2017년부터 꾸준히 늘어왔다. 2019년에는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증가세가 유지됐지만, 지난해 5년 만에 성장세가 꺾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업종에서 바이오와 의료 분야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8년 24.6%를 기록했다. 2019년 25.8%, 2020년 27.8%, 2021년 21.8% 등으로 20% 이상을 유지해 왔지만 지난 2022년에는 16.3%로 축소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3월 2일까지 벤처캐피털 및 스타트업 정보 서비스인 더 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총 245억원의 자금이 바이오 분야에 투자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841억원에 비해 86.6% 줄어든 수치다.
시장 전문가들은 바이오 투자 규모가 줄어든 근원적인 원인으로는 ‘금리’를 꼽는다. 0.25% 포인트였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2022년부터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인상되며 벤처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려 안전 자산으로 향한 탓이다. 국내 한 초기투자 심사역은 “금리가 오르면서 신규 펀드 결성도 지연이 됐다”며 “이 때문에 드라이 파우더(투자여력)도 줄어든 영향”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투자자의 주된 회수 통로인 기업공개(IPO)가 막히면서 바이오 투자에 더욱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게 됐다. 지난해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은 4곳으로 2021년 8곳 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국민 바이오주였던 신라젠에서 횡령과 배임이 발생하며 상장폐지 문턱까지 다녀온 일이 있었고, 오스템임플란트의 대규모 횡령, 메지온의 임상 3상 실패 등 업계의 악재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국거래소가 심사 문턱을 높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증시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여의치 않으면서 신규 투자를 줄이는 추세”라며 “먼저 투자한 회사에 대한 제한적인 후속투자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