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3·1절 기념사… 尹, ‘과거’ 대신 ‘연대와 미래’ 강조

입력 2023-03-01 17:29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장 포상을 마친 뒤 기념사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취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다. 민감한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현재의 복합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포괄적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기념사와 비교하면 기조가 완전히 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3·1절 기념사에서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기념사에서는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면서도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과거사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것은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하면 이후 일본과의 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지금은 보다 포괄적인 양국 관계의 미래 지향적 협력 방향 정도를 얘기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일본에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 강제징용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3·1절 기념사는 약 1300자, 5분25초 분량이었다. 역대 기념사에 비해 상당히 짧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구구절절하게 수식어를 달지 않은 심플하고 담백한 연설문이 윤 대통령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독립’을 10차례, ‘자유’를 8차례, ‘미래’를 5차례, ‘과거’와 ‘번영’ ‘기억’ ‘헌신’을 각각 4차례 언급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과거를 잊지는 않겠으나,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자유라는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나라와 연대해 미래로 가자는 것이 기념사의 핵심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날 ‘통일’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북 메시지도 없었고 ‘북핵 위협’만 2차례 언급했다. 북한 비핵화 전략인 ‘담대한 구상’을 거듭 제안했음에도 북한이 미사일 도발로 응수하고 있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기념사 중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대목을 두고 “귀를 의심했다. 선열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이 대표는 “일제 강점의 책임이 조선 스스로에게 있다는, 일제 침략 정당화에 쓰였던 사관”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서도 “윤석열정부는 3·1운동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3·1절 범국민대회에서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마치 돈 없어서 싸우는 것처럼 처참하게 모욕한 것이 바로 이 정부”라고 비난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