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전기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한 연료비다. 같은 거리를 주행했을 때 전기차 충전요금이 내연기관차의 기름값보다 싸다는 건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나 최근 전기료 상승으로 전기차 연료비가 내연기관차를 역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리서치회사 앤더슨이코노믹그룹(AEG)은 최근 기존 인식을 뒤집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12월 중위가격(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가격)에 있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연료비를 비교했다. 내연기관차로 100마일(약 161㎞)을 달렸을 때 든 연료비는 11.29달러(약 1만4960원)다. 가정에서 충전한 전기차는 같은 거리를 달릴 때 전기료 11.6달러(약 1만5370원)가 들었다. 내연기관차보다 오히려 31센트 비쌌다. 상업용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한 경우에는 14.4달러(약 1만9080원)로 가격 차이가 더 벌어졌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고공행진 여파로 전기요금은 크게 증가한 반면 지난해 치솟았던 유가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게 이런 상황을 촉발했다. 영국 왕립자동차클럽(RAC) 산하 조직 ‘RAC차지워치’의 조사 결과도 싼 연료비는 더 이상 전기차의 장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RAC차지워치에 따르면 영국의 전기차 급속충전소 충전요금은 지난해 5월 44.55펜스에서 9월 63.29펜스로 약 42% 치솟았다. 방전 상태에서 80%까지 채우는 데 드는 비용은 22.81파운드(약 3만6700원)에서 32.41파운드(약 5만2100원)로 뛰었다. RAC차지워치는 “1마일에 약 18펜스를 지불하는 셈이다. 휘발유차 19펜스, 경유차 21펜스와 거의 같아졌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 생각이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전기요금이 치솟으면서 전기차의 ‘비용 이점’이 사라졌다. 전기차의 충전비가 저렴하다는 장점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변화가 유럽의 전기차 전환 목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도 충전비용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영국 매체 CNBC는 “유럽은 앞으로 수개월 간 에너지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자체 급속충전기 슈퍼차저의 충전요금을 인상했다. 5월과 8월에 이어 세 번째다. V3급(최대출력 250㎾) 슈퍼차저는 기존 분당 327원에서 360원(5월), 378원(8월), 423원(9월)으로 올랐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해 9월 전기차 급속충전소 E-피트의 충전요금을 11~17% 인상했다. 반면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6월 5일 ℓ당 2138원(전국 평균)으로 정점을 찍은 뒤 28일 기준 1580원까지 하락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