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인 3·1절을 맞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팬더믹 종식 이후 완화된 여행 제한 조치와 엔화 약세, 짧은 이동 시간이 일본을 택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독립운동 기념일인 3·1절에 일본 여행을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여전하지만 여행객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항공업계 “일본행 티켓 예약률 90% 넘어”
28일 티웨이항공에 따르면 이달 마지막 주말인 지난 25일부터 3월 1일 닷새간 한국발 일본행 항공권의 평균 예약률은 93%를 기록했다. 3월 1일자 일본행 항공권도 대부분 팔렸다고 한다. 진에어와 제주항공 역시 같은 기간 평균 예약률은 90% 이상이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최근 판매된 패키지여행과 항공권 3개 중 1개는 일본 상품”이라며 “3·1절 전후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에어부산 항공권 역시 전날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일본(후쿠오카·오사카·나리타) 지역 평균 예약률이 80% 후반을 기록했다. 부산~나리타 구간은 90% 넘는 예약률을 나타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다음 달 1일 부산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라고 말했다.
여행·항공업계는 봄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징검다리 휴일’을 맞은 직장인들이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의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본다. 3·1절 뒤로 이틀(3월 2·3일) 휴가를 내면 5일간의 휴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도 일본 여행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 이용자는 3월 1일 출발하는 나리타행 왕복 항공권에만 약 100만원을 썼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항공권 예약사이트를 조회해보면 3월 1일 출발해 5일 귀국하는 김포-하네다 구간 항공권은 가격대가 60만원대 후반에서 100만원대에 이른다.
“최소한 독립운동 기념일은 피해야” vs “日 물가가 제주도보다 싸”
일부 커뮤니티에선 독립운동 기념일에 일본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여행을 비판하는 이들은 “최소한 독립운동한 날은 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여행가는 이들은 3·1절이 무슨 날인지도 모를 것” “일본여행 가서 ‘와사비 테러’ 당하시라”고 질타했다. 최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이어가는 등 한국인을 자극하는 일본 당국의 행보를 언급하는 이들도 보였다.
그러나 다수의 커뮤니티에선 여행객을 옹호하는 의견들이 우세한 형국이다. 이들은 “본인이 번 돈으로 선택하고 여행가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 “가치관의 차이일 뿐” “노재팬 계속하시라, 항공권 가격 좀 내려가게” “국내여행 가서 눈탱이 맞느니 외국 가서 새로운 느낌 가지는 게 낫다” “일본 물가가 제주도보다 싸다”고 항변했다.
이는 불과 몇 년 전 ‘노 재팬’(No Japan·일본 상품 불매운동) 분위기가 무색해진 모습이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와 3·1운동 100주년 등을 맞아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 여행객 발길이 뚝 끊겼던 바 있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도 여행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日여행객 세 명 중 한 명이 한국인
일본 여행이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국민 12만3000명가량이 일본에 간 것으로 집계됐으며, 12월에는 45만6000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달엔 일본을 찾은 외국인 149만7000명 중 37.7%(56만5000명)가 한국인으로 가장 많았다. 일본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세 명 중 한 명은 한국인인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윗세대로 갈수록 역사·정치문제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세대가 점차 바뀌면서 그런 면이 많이 흐려졌다”며 “과거사와 문화 소비를 분리해 생각하는 게 일반화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