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냐 ‘무’냐 75분 입씨름…“의원이 글씨도 못쓰나”

입력 2023-02-28 06:34 수정 2023-02-28 10:25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된 가운데 부·무효표로 인해 개표가 중단됐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가운데 불분명한 글씨 때문에 ‘무효표 논란’이 벌어져 개표에만 80여분이 소요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27일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개표 과정에서 ‘무’ 또는 ‘부’로 읽히는 흘려 쓴 글자가 표기된 용지와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적힌 용지가 각각 1장씩 나와 약 75분간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들이 직접 손으로 ‘가’(可·가결) 혹은 ‘부’(否·부결)를 적어야 하는데 ‘부결’인지 ‘무효’인지 의미가 불분명한 표가 두 표나 나온 것이다. 국민의힘 감표 위원들은 해당 투표용지가 “둘 다 무효표”라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감표 위원들은 “부결표”라며 대립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실시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 검표 위원들이 기표용지 2장에 대한 유,무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받아쓰기도 아니고 보고 쓰기인데 그걸 못 썼으면 무효”라면서 “다 무효로 하는 게 맞는다.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미애 의원도 “국회가 왜 이러냐. 한국말도 모르냐”고 지적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무효표를 전광판에 띄워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에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네가 뭔데 띄우라 말라 하느냐”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대립이 계속되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를 불러 상의했다. 이후 김 의장은 “이 두 표는 일단 제외하고 나머지 표를 (검표를) 진행해서 만일 그 두 표 때문에 가부의 문제가 갈릴 수 없다면, 그때는 표결을 중단하고 다른 합법적 방법을 통해 두 표의 그 표가 부표냐 무효표이냐 가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검표 중 나온 2개의 투표용지에 대한 유,무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설명에 국민의힘 측은 수긍했으나 민주당 측에선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들 투표용지 때문에 통상 20분이면 나오는 개표 결과가 이날은 1시간반 가까이 걸리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김 의장은 투표함을 연 지 80여분이 지난 뒤에야 부결을 공식화했다. 그는 “제 판단에 (문제 표 2표 중) 한 표는 ‘부’로 보는 게 맞고, 다른 한 표는 무효로 봤기 때문에 의장 책임하에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다”면서 “297표 중 ‘가(찬성) 139표, 부(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을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개표 과정에서 나온 무효표 여부와 관련 휴대폰으로 찍은 가부란 모습을 보고 있다. 뉴시스

모호한 글씨로 무효표 논란을 빚은 2장의 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표결 결과를 ‘가부동수’로 만들려는 민주당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배현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실수로 점 하나만 찍혀도 무효가 되던 본회의 표결 원칙은 어디 가고 감표위원들 간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며 “뜻밖의 대량 표 이탈에 민주당이 두 표라도 건져 찬반 가부동수(찬성 139, 반대 139)라도 맞추고자 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명(친이재명)계는 불쾌감을 표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페이스북에 체포동의안 통과에 반대하는 ‘부’자를 제대로 쓰지 않은 기표용지 사진을 올리면서 “흘려 쓴 ‘부’자가 원래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 의도적인 무효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의원은 제 발로 걸어나가 집을 향하는 게 어떨까”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시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