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김만배씨와 편집국에서 신문총괄을 담당했던 전 간부 A씨의 돈 거래 의혹을 조사한 한겨레 진상조사위원회가 27일 “돈거래의 적법성만 따진 결과 ‘이해충돌 회피 의무’ 등의 언론 윤리적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사건 관련 진상조사위원회’는 돈거래 의혹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A씨 등 특정인에 의한 기사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두 사람의 돈거래에 대해 “9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리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았고 변제 시기 약속도 불분명했다”며 “정상적 관례를 크게 벗어났다”고 봤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김만배씨로부터 9억원을 수표로 받았다.
이해충돌 문제가 본격화한 시점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한 2021년 9월이다. 당시 김만배씨와 금전 거래가 얽혀있던 A씨는 이해충돌 상황을 마주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회사에 보고하거나 직책에서 물러나려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편집국 간부들이 두 사람의 금전거래 사실을 처음 파악한 2022년 3월에도 이해충돌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사회부장과 편집국장은 두 사람의 돈 거래 사실을 2022년 3월에 알았지만, 정상적인 차용관계라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진상조사위는 이들이 차용 관계의 “적법성에만 주목했다”며 ‘이해충돌 회피 의무’ 등 기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 의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다. 기자에게는 적법성보다 앞서는 높은 수준의 언론 윤리가 필요했다는 취지이다.
또 진상조사위는 A씨가 과거에 쓴 칼럼에서 ‘내로남불’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 3월에서 2020년 6월에 걸쳐 석 전 총괄이 쓴 3개의 칼럼에는 “힘 있는 이들이 청탁을 얼마나 가볍고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진상조사위는 “엄정한 잣대가 본인에게 작동하지 못했다”며 “독자들이 반감을 갖고 비판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는 “언론계 종사자 그 누구도 윤리적 성찰의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구체화하고, 언론윤리를 뒷받침해줄 만한 시스템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상조사위는 내부 구성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언론 윤리를 해치는 요인이 됐다면서 언론윤리 시스템의 재정비를 강조했다.
이정헌 수습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