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우러전쟁… 산업계 버티기로 ‘포스트워’ 준비

입력 2023-02-27 07:00 수정 2023-02-27 16:22
삼성전자가 201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갤럭시 스마트폰 옥외광고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종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토요타, 애플, TSMC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전쟁 이후 잇따라 탈러시아 선언을 했지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국내 기업들은 버티고 있다. 러시아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포스트 워(Post War)’를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다수는 전쟁이 연내 마무리되기는 어렵다는 데 무게를 둔다. 근래 서방이 연합해 무기 지원 등에 나서면서 우크라군의 전력이 강화되고, 러시아군도 개전 1년을 맞아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일진일퇴 소모전 형태로 2~3년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국제금융센터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EU 소속 국가 등 전 세계 46개국 이상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의미로 한 대러 제재 조치만 지난 1년간 1만901건에 달한다. 아마존, BP,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 수백 개가 철수했다. 그사이 중국 기업이 그 시장을 차츰 파고들면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한 여성이 모스크바강을 가로 질러 크레믈린으로 향하는 LG다리를 걷고 있다. 국민일보DB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전쟁 전인 2021년 12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1∼2위는 삼성(35%)과 애플(18%)이었다. 2022년 12월에는 각각 2%, 1%로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같은 기간 샤오미와 리얼미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점유율 합계는 40%에서 95%로 약진했다. 특히 샤오미는 러시아 스마트폰 판매 1위에 올랐다.

자동차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자동차 시장 분석업체 오토스타트는 지난해 러시아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7%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기아의 점유율은 13%에서 10%로, 현대차는 10%에서 9%로 각각 줄었다. 삼성전자는 TV 시장점유율 1위를 내줬다. 제재에 불참한 중국이 러시아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는 전쟁 이후 러시아 현지법인의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지만 철수한 것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27일 “러시아는 구소련 블록의 중심이다.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까지 연결하는 매우 큰 시장이다. 한번 철수하면 다시 진입하기 어렵다. 쉽게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버틴 경험도 이런 판단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소니 등 글로벌 기업이 엑소더스 행렬에 섰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오히려 사업을 확장했고 러시아 국민들이 제일 선호하는 가전 브랜드로 성장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공식차량 전달식에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공식 마스코트 자비바카(Zabivaka, 왼쪽부터), 알렉세이 칼리체프(Alexey Kalitsev) 현대차 러시아 법인 임원, 오익균 현대차 러시아 법인장, 제이 노이하우스(Jay Neuhaus) FIFA 마케팅 담당 임원, 알렉세이 소로킨(Alexey Sorokin) 대회 조직위원회 (LOC) 위원장, 네마냐 비디치 (Nemanja Vidic) FIFA 홍보대사, 정원정 기아차 러시아 법인장, 발레리 타라카노프(Valeriy Tarakanov) 기아차 러시아 법인 마케팅 임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제공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휘청였던 2015년 GM 등이 공장을 폐쇄하는 사이 현대자동차는 ‘버티기’로 러시아 시장점유율을 전체 2위로 끌어 올렸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쟁은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현지 공장과 거래선을 최대한 관리하면서 버티는 중이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