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유골(예사로운 말 속에 뼈가 있다)’이 아닌 ‘언중유게임’의 시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2022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0세부터 65세 일반인 중 74.4%가 게임을 즐겼다. 이러한 영향인지 게임 용어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미디어까지 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게임의 언어가 이제는 표준어처럼 쓰이는 셈이다. 일상 용어로 둔갑한 게임 용어를 살펴봤다.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싸움.
‘자강두천’은 중국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같지만, 사실 게임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풀어 쓰면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인데, 5년 전 유튜버 ‘붐바야’가 T1 소속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과 유명 인터넷 방송인 ‘도파’ 정상길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편집하며 사용했던 게 시초로 알려졌다. 이후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커뮤니티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해당 용어를 즐겨 쓰면서 일반 대중에도 차츰 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시초가 된 용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디르급 태세전환’이다. 태세 전환이란 ‘어떤 일이나 상황을 앞둔 태도나 자세’를 뜻하는 태세를 바꾼다는 의미인데, 이 앞에 ‘우디르급’이란 단어가 붙어 말이나 행동을 너무 빨리 바꾸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가 됐다.
우디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중 하나로 민첩성이 특징이다. 해당 챔피언은 전투 중에 ‘호랑이 태세’ ‘거북이 태세’ ‘곰 태세’ ‘불사조 태세’ 등 총 4가지 스킬을 쉴 틈 없이 바꾸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탓에 태도가 이리저리 급변하는 사람을 비꼴 때 “우디르급 태세전환”이라는 말을 쓴다.
한자 같은 신조어, ‘신박하다’, ‘가불기’
‘신박하다’는 새롭고 놀랍다는 뜻으로 보통 읽히기 쉽다. 새로울 신(新)과 대박의 ‘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박하다의 어원은 블리자드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유래됐다. 게임 내 이용자들은 게임 속 직업인 ‘성기사’가 모든 종류의 아이템에 욕심을 부리고 각종 생존기로 잘 죽지 않아 ‘바퀴벌레’라고 속칭했다.
커뮤니티에선 기사가 들어가는 말을 모두 ‘박휘’와 붙여 비꼬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신성 성기사’와 ‘박휘’를 붙인 신박하다는 말이 탄생했다.
‘가불기’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인 ‘불가(不可)’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론 영어가 섞인 신조어다. 대전액션 게임에서 유래된 해당 용어는 가드나 회피로 막고 피하는 게 불가능한 스킬을 의미한다. 즉 ‘가드 불능 기술’을 축약한 단어다. 공격자의 공격에 대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나 진퇴양난의 상황에 흔히 사용한다.
외국인도 모르는 외래어 ‘극딜’
극딜은 한자의 심할 ‘극(極)’과 공격을 의미하는 영어 ‘Deal’이 합쳐진 용어다. 게임 속에선 강하게 집중 공격할 때 ‘극딜을 넣다’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MZ세대 사이에선 친구에게 장난을 칠 때 ‘극딜한다’라는 표현으로도 활용된다.
‘너프’란 게임 속에서 ‘어떤 캐릭터나 아이템의 능력이 과하게 강할 경우 밸런스를 위해 하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캐릭터의 기본 능력치를 증가시키는 효과 혹은 스킬을 말하는 ‘버프’의 반댓말로 쓰인다. 이제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표준처럼 사용하는 ‘너프’라는 단어는 사실 틀린 표현이다. 맞게 사용하려면 하향의 뜻을 갖는 ‘디-버프’라고 써야 한다.
너프(Nerf)란 본디 장난감 상표명이다. 고전 게임인 ‘울티마 온라인’에서 근접 공격용 무기의 공격력을 패치로 낮췄을 당시, 이용자들이 해당 칼을 보고 너프 상표의 장난감을 휘두르는 것 같다고 속칭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