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이 종료되는 말미에는 입소 선임으로 주변을 살피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수상 대상에 명단을 올리는 자체가 계면쩍은 면이 적지 않았다.
사회적인 명성이나 투쟁 관록, 학문적 기여도 면에서 말이다. 심문관이 어느 날 고려대학에 얼마나 근무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내일 들어오는 고려대 교수님들이 있는데 어떤 분인지 얘기 좀 해보시지요. K 교수 말입니다.”
K 교수는 고려대 시청각 교육원장 때 나를 매체연구실장으로 임명하고 사적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시던 선배 교수님이셨다.
그분이 왜 여기로 불려 왔는지 오히려 궁금했다.
“그분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입학하시고 영문학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취득하시고 서울대 교수로 계시다 고려대학으로 옮기신 석학이십니다. 정치를 멀리하고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신 순수한 선비풍의 학자이십니다.”
그냥 한번 물어 본 것인데도 교수님에 대해 좋게 말하려고 열정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통계학과 K교수, 정경대학장 C 교수도 심문을 받았다. 서강대 P 총장, 시인 S씨 등 유명 인사를 속속 뵀다.
P 총장은 입소하자마자 우람한 헌병을 보고는 “담배 좀 있습니까? 한 대 피워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헌병은 당장 “쪼그려 펴기 실시”라고 하면서 기강을 잡았다.
P 총장은 “이거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어요”라고 응수했다.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고문은 없었다. 그런데 일부 인사는 너무 겁을 먹고 자지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심문조서에 사인을 하고 종로경찰서로 이송될 시간을 기다렸다.
아침 기상 후 조금 있다 얼굴이 겁나게 생긴 수사반장이 나를 찾았다.
“오늘은 면도를 잘하고 복장도 단정히 해서 준비하고 대기하세요.”
독촉을 했다. 같이 어디 가야 하는데 “묻는 대로 겸손하게 처신을 잘해야 한다”며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었다.
‘종로경찰서로 이송되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별안간 도대체 어디로 가서 무슨 할 일이 남았는지 악운이 끝이 없나보다’
그렇게 낙담 하면서 수사반장을 뒤따라갔다.
수사반장은 무슨 영문인지 상부지시를 처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무실에 다다르자 수사반장이 옷깃을 여미고 긴장하면서 문을 두드렸다.
한 군인이 서류를 뒤적이면서 문을 향해 나를 힐끔 쳐다 봤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서울 동숭동 학창 시절에 동고동락한 동창이 살며시 웃고 있었다.
그 동창은 당시 군에 입대해 법무관 육군 중령으로 있었다.
육군본부 법무감실 검찰부장으로, 후일 육군 법무감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역임하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C 변호사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조사관들에게 대강 들었다. 내 친구는 제자를 아끼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학자다. 학생 시위를 조종하거나 배후가 될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동창에게 반갑고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참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어떻게 그 친구를 거기서 만날 수 있었는지 성령님께 묻고 감사기도를 드렸던 그때 기억이 새롭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시 25:15)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