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침입 강제추행에 살인보다 무거운 징역은 “위헌”

입력 2023-02-23 18:07

남의 주거지에 침입해 강제추행을 저지른 경우 최하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3일 성폭력처벌법 3조1항에 대한 전주지법 등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 25건과 헌법소원 7건을 병합 심리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해당 조항은 주거침입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강제추행·준강제추행을 저지른 경우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제청법원과 청구인들은 “행위 유형이 다양함에도 주거침입강간·유사강간죄와 동일하게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7년으로 정했다”며 위헌성을 주장했다.

헌재는 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징역 7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하는 건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법정형 상한을 무기징역으로 규정해 중대한 범죄에는 중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하한까지 일률적으로 높게 책정하는 건 위헌적이라는 취지다. ‘징역 7년 이상’은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징역 5년 이상)보다도 높다.

집행유예 가능성을 아예 차단한 것도 위헌 근거가 됐다. 주거침입강제추행죄는 법정형 하한이 징역 7년이라 판사가 정상참작 감경을 해도 집행유예 선고 기준(징역 3년 이하)에 미치지 못한다. 헌재는 “다른 법률상 감경 사유가 없으면 일률적으로 징역 3년 6개월 이상의 중형에 처할 수밖에 없어 형벌개별화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이선애 재판관은 입법 과정에서 국회 실수를 지적하는 별개 의견을 냈다. 국회가 성폭력처벌법 3조2항 특수강도강간죄와 혼동해 3조1항에 대한 심의 없이 법정형을 상향했다는 것이다. 이 재판관은 “다른 성폭력 범죄와의 혼동으로 심의를 누락한 채 성폭력범죄의 체계상 균형을 범행 주체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으로 의결했다는 중대한 오류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따라 2020년 5월 개정 이후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강제추행·준강제추행 혐의로 처벌받은 이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