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화를 불렀다. 한·중·일 3국의 바둑 국가대항전에서 한국 팀의 4번째 주자로 나섰던 변상일 9단이 중국의 구쯔하오 9단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결국 승부는 ‘1인자’ 신진서 9단의 손에 달렸다.
변 9단은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과 중국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2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라운드 13국에서 구쯔하오에게 230수 만에 불계패를 당했다.
초중반 형세는 변 9단에게 유리했다. 흑을 잡은 변 9단은 백이 오른쪽 변에서 서두르는 틈을 타 우위를 잡았다. 인공지능이 예상한 승률은 한때 90%를 넘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변 9단은 차근차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대신 곧장 끝을 보겠다는 듯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전투 바둑을 즐기는 그다운 스타일이었지만 여기서 악수가 나왔다. 구쯔하오 9단은 반대로 승부처에서 잇따른 묘수를 통해 흐름을 뒤집었다.
치열했던 수상전이 백의 승리로 귀결되자 대국은 급격히 기울었다. 전장을 흔들어보려는 변 9단의 시도는 번번이 막혔다. 자책하는 듯 뒤늦게 머리를 잡아 뜯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대국은 시작한 지 2시간 50분가량 지나 백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중국의 마지막 주자인 구쯔하오 9단은 전날 박정환 9단을 잡아낸 데 이어 이날 변 9단까지 꺾으며 벼랑 끝 승부에서 한국 바둑 2·3인자를 연달아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두 차례 대국 모두 상대전적에선 한국 기사들이 앞서 있었기에 더 뜻밖이었다.
박 9단이 앞서 중국의 커제 9단을 꺾을 때만 해도 기정사실로 보였던 농심배 3연패는 두 차례의 연속된 패배를 거치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돌은 다시 한번 신진서 9단의 손에 들어갔다.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신 9단은 2021년과 지난해 한국의 농심배 연패 당시에도 중추 역할을 도맡았다. 각각 5연승과 4연승을 거두며 혈혈단신으로 중국·일본의 쟁쟁한 기사들을 무너뜨렸다.
신 9단은 구쯔하오 9단과 24일 맞붙어 이번 대회 최종 승자를 가린다. 승리 시엔 한국이 통산 15번째로 농심배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