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샌드박스 이영남 전력분석관은 인공지능 연구원 출신으로 의학·학습환경·게임 등의 분야에 몸담아왔다. 지난해 10월 리브 샌드박스에 합류해 팀의 스토브리그 전략 수립을 도왔고, 현재는 팀의 밴픽 및 인게임 전략 수립에 필요한 데이터를 코치진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팀 사옥에서 이 분석관을 만나 리브 샌박의 ‘모래 폭풍’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팀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 같은 결과를 예상했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당연히 예상했다. 플레이오프는 당연히 갈 거로 봤다. 지난 스토브리그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시즌을 적당히 치를 생각은 없고, 우승을 노리기 위해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당시에 말씀드렸다.
우리에겐 세 가지 근거가 있었다. 첫 번째는 훌륭한 코치진이다. 류상욱 감독, 김다빈, 김우섭 코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그 결과 이들과 함께라면 로스터를 어떻게 구성하든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세 사람 모두 관성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류 감독에겐 게임과 지도방식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있다. 김다빈 코치 역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김우섭 코치는 우리가 입단 지원서를 받아서 뽑은 비선출 코치다. 20명 정도가 지원했는데 김 코치만 유일하게 면접 기회를 얻었다. 그는 게임에 대한 논리력과 데이터를 바라보는 관점이 탁월하다.
우리의 지도자 선임 테마는 크게 세 가지였다. ▲데이터 수용 여부와 데이터 해석 능력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는 메타인지력 ▲의사소통 역량을 중요하게 봤다. 세 사람 모두 만점에 가까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두 번째 근거는 선수들의 성장 속도다. 우리는 로스터 완성 후에 선수들의 장단점,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능력과 그럴 수 없는 능력 등을 구분해놨다. 특정 주기마다 선수들의 능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트래킹(tracking)을 했는데, 우리의 예상보다 선수들의 발전 속도가 빨랐다.
세 번째 근거는 앞선 두 가지와 결이 아주 달랐다. ‘클로저’ 이주현이라는 선수 자체가 근거다. 팀 내부적으로는 그가 앞으로 더 잘할 거로 확신하고 있지만, 이미 현재로서도 그가 LCK 미드라이너 중 톱 1~2위를 다투는 능력을 몇 개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고르게 잘하는 선수보다 특정 능력이 정점에 가까운 선수들의 전술적 가치가 더 뛰어나다. 밴픽으로든, 인 게임 전략으로든 이주현의 능력을 잘 살릴 수 있다면 팀의 최대 역량으로 거둘 수 있는 성적보다 2~3승을 더 챙길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코치진이 그걸 현실화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세 가지 근거가 모두 맞물려서 좋은 성적을 낼 거란 예상으로 이어졌다. 물론 예상과 확신은 별개다.(웃음) 이만큼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100% 확신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지금의 경기력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다.”
-데이터 분석을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성 스포츠와 다른 LoL의 특성을 탐구해야 한다. 한때는 ‘야구는 정적이어서 데이터 분석이 용이하지만, 축구는 동적인 스포츠여서 그렇지 않다’고 해서 축구계에서 데이터 분석이 등한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아니지 않나. 축구의 특성에 맞춘 지표들이 새롭게 나오면서 그 중요도가 높아졌다.
LoL의 지표는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에 가깝다고 본다. ‘킬을 많이 해서 이겼다’ ‘킬을 많이 했으니 잘하는 선수다’가 아니고, ‘잘하는 선수니까 킬을 많이 한다’고 봐야 한다. LoL에서 경기 시작 후 10분경 점수를 따면 이후 게임이 유리해진다. 축구는 전반전을 2대 0으로 마쳤다고 해서 후반전에 골 넣을 확률이 더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 LoL만의 특성을 고려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데이터가 유독 재밌게 나오는 선수도 있나.
“‘윌러’ 김정현과 ‘클로저’ 이주현의 지표가 재밌다. 김정현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의 지표를 주의 깊게 봤다. 두 가지 지표는 이 선수의 장점과 일치할 것으로 봤는데 실제로도 정확했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주현은 지난해 서머 시즌에 올-프로 서드 팀에 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중들로부터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지가 않다. 이주현이 있음에도 우리 팀이 ‘4약’으로 평가됐던 것도 그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주현은 세부 지표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지표로 확인할 수 없는 능력들도 갖고 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보다 선수의 실제 실력이 좋은데, 대중으로부터는 드러나는 지표보다 저평가를 받고 있으는 셈이다.”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네 가지 척도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데이터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본질은 시스템이다. 리브 샌박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팀 중 하나인 탬파베이 레이스는 왜 매년 좋은 성적을 낼까? 내부 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선수 개인의 발전 상황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기적으로 코치진에게 선수 평가를 부탁하고, 선수와 개별 면담을 하는 이유도 선수 능력을 정량 평가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광적일 정도로 기록에 집착한다. 지난해 48일간의 스토브리그 과정도 정말 세세하게 기록했다.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 가설과 변화…데이터는 그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선수 능력의 평가 척도를 네 가지로 정한 건 육성군 코치진들이 3주 넘게 고민한 흔적이다. 우리가 100% 창의적으로 만든 건 아니고, 축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걸 LoL에 맞게끔 개량한 것이다. 축구는 선수 평가 방식에 대한 논문이나 박사학위 과정이 있을 정도로 이 분야의 길이 잘 터져있다.
I(interaction)는 전술적 이해도를 뜻한다. 업계에선 ‘팀 콜’이란 단어로도 표현한다. 대각선의 법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와, 오브젝트 싸움 전 와드 작업을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은지 얘기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D(decision)는 판단력이다. 전략·전술을 짜주는 건 코치진이지만 결국 경기 내에서 판단은 선수 본인이 내려야 한다. LoL은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 동적인 게임이다. 때로는 선수가 코치진의 결정과 반대되는 플레이라도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
E(execution)는 실행 능력이다. 머리로는 당장 2대2, 3대3 교전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업계 용어로는 주로 피지컬 또는 메카닉이라고 표현한다. C(concentration)는 집중력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도의 집중을 유지한 채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축구로 치면 체력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가 분류한 네 가지 능력에 높낮이는 없지만, 팀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E는 알려주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본다. 또한 I는 선수들의 콜을 들어봐야만 평가할 수 있어서, 일반 시청자들이 알 수 없다.”
-리브 샌박이 정착시키고자 하는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모든 선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한다. 그렇다면 A급으로 평가받는 선수가 S급 선수를 추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A급 선수가 성장하는 동안 S급 선수는 놀고만 있는 게 아닌데. 그러기 위해선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S급 선수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시스템이란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일 뿐이다.
모든 팀이 똑같이 하루 6번씩 스크림(scrimmage·연습경기)을 한다. 야간 스크림을 해봤자 하루에 2~3게임을 더 할 뿐이다. 우리 팀만 100번 연습할 수 있다면 남들보다 앞서나가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매 경기를 더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그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가령 코치가 ‘이 선수는 A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면 우리는 선수의 A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1~4번 훈련법을 써본다. 4번 훈련법으로 선수의 A능력이 개선된다면 추후 비슷한 유형의 선수에게도 4번 훈련법을 권유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훈련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A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며, 보완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야 한다. 추후 선수 선발 시에 A능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가중치를 둬야 한다.
시스템 구축은 기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코치진은 경기가 끝나면 무조건 사무실로 복귀해서 그날 경기 내용을 리뷰하고 피드백을 작성한다.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나빠도, 신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해도 예외 없이 무조건 그렇게 한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경기다.”
-LoL이란 게임에 ‘가장 좋은 운영법’이라는 건 존재한다고 보나.
“류 감독과 함께 탐구 중인 영역이다. 나는 가장 좋은 운영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시즌 초부터 각종 오브젝트의 밸류를 측정 중이다. 게임 내에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므로 주입식으로 가르치거나 강조하진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게 더 좋은’ 이유를 수치로 보여주고 가이드를 제시한다.
특정 선택을 했을 때 승률이 70%라면 결국 10번의 게임 중 3번은 그 선택 때문에 진다는 것이다. 그 3번의 게임에선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좋다. 같은 플레이를 10번 반복해서 7번을 이기게끔 선수들에게 전략을 주입할 것인지, 아니면 나머지 3번도 이길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를 도울 것인지는 감독의 철학 차이에 달려있다. 류 감독은 후자다. 어떤 데이터는 선수에게 일부러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 코치진끼리만 공유하고 참고해서 피드백에 사용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정보를 얻었을 때 도리어 사고가 굳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데이터로 도출해낸 결과와 선수·코치의 생각이 달라 설득에 애를 먹은 경험도 있나.
“설득하기 어렵다기보다는 관점의 차이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가령 A챔피언에 대해 코치와 선수는 ‘무조건 뽑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굳이 A챔피언을 해야 할까?’ 의문을 가진다. 지표로만 보면 여러 환경 상 좋지 않고, 라인전 매치업 지표도 나쁘다. ‘앞면이 나올 확률이 30%에 불과한 동전인데 차라리 40%짜리 동전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이 경우에는 코치진과 의논을 통해서 이견을 좁힌다.
챔피언 상성 관계는 대체로 선수의 직관과 데이터값이 일치한다. 선수들이 라인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구도가 있는데, LoL이란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수가 라인전을 이기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가로서 라인전 승리와 게임 승리 간 연관성이 아주 높은 것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챔피언의 후반 밸류, 조합의 시너지, 챔피언마다 주어진 역할 등을 전부 고려하면 다시 생각해봄 직한 상성 관계들도 있다.
나는 여러 전문가의 리뷰도 다 챙겨보는 편인데 몇몇 구도에 대한 해석은 이견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내가 가진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 팀에 아주 유리한 매치업이 형성됐는데도 전문가들이 종종 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리브 샌박의 밴픽이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역시 데이터의 힘일까.
“이 얘기는 꼭 기사에 넣어줬으면 한다. 데이터가 밴픽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은 맞지만, 밴픽이란 것은 감독과 코치의 역량이 절대적인 분야댜. 세 사람의 게임 이해도, 메타를 바라보는 관점, 데이터 활용 능력이 정말로 뛰어나다. 나는 ‘특정 구도는 불리하다’거나 ‘이 선수가 이런 플레이를 하는 게 유리하다’는 뜻 정도만 데이터에 근거해서 전달한다. 또는 코치진이 준비한 상대 밴픽 시나리오에 중복과 누락은 없는지 살펴본다.
류 감독이 데이터를 정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난 T1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도 2세트 종료 직후 특정 데이터를 뽑아달라고 부탁해서 3세트 때 활용하더라. 데이터 분석의 도움이 없었어도 우리 팀의 밴픽은 고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코치진의 역량이 뛰어나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