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1억도에서 5분.’
인공태양을 만들어 무한 에너지를 손에 넣기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지난 22일 대전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하 연구원)에서는 이를 위해 KSTAR(케이스타·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에 ‘텅스텐 갑옷’을 입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케이스타는 핵융합 기술 획득을 위해 2007년 9월 제작된 핵융합실험로다. 핵융합이 이뤄지는 ‘1억도 이상 고온 플라즈마’를 30초 동안 유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장비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연구원은 텅스텐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올해 안에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목표는 50초다.
케이스타는 태양의 중심부를 흉내 내 만든 장치다. 태양 에너지의 원천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다. 수소원자핵이 서로 융합할 때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가 힘의 근원이다. 태양 중심부는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곳의 수소원자핵들은 태양 내부의 강력한 압력에 짓눌려 조밀하게 모여 있다. 여기에 1500만도라는 엄청난 열이 가해져 원자핵들이 빠르게 이동, 서로에게 달라붙어 에너지를 만들게 된다.
지구에 있는 케이스타가 태양처럼 원자핵들을 강하게 압축할 수는 없다. 핵융합 반응을 얻고 싶다면 태양보다 뜨거운 열로 원자핵들이 빠르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압력을 온도로 만회하는 셈이다. 최소 1억도는 돼야 융합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1억도를 견뎌낼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1억도의 원자핵을 플라즈마 상태로 ‘공중부양’시키는 방법이 고안됐다. 플라즈마란 고체 액체 기체에 이은 제4의 물질 상태로 번개가 대표적이다. 케이스타는 1억도의 플라즈마를 진공 용기에 넣고 강력한 자기장으로 공중에 띄워주는 장비다. 마치 빛으로 만든 도넛 같은 모양이 되는데 이를 ‘토카막 방식’이라고 한다.
그동안 30초 남짓이 한계였다. 1억도의 플라즈마는 자기장에 갇혀 공중에 떠 있더라도 주변을 극한의 환경으로 만든다. 강력한 열과 함께 플라즈마에서 튀어나오는 입자가 총알처럼 탄소 타일을 때렸다. 탄소는 열에는 강해도 입자 충돌에는 취약하다. 장비가 가동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상된다. 입자 충돌로 뜯겨 나온 탄소가 플라즈마의 수소 원자와 결합하면 불순물이 만들어진다. 수소는 핵융합을 위한 연료다. 연료가 엉뚱한 곳에 쓰이므로 핵융합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텅스텐은 탱크나 포탄 등에 쓰일 정도로 단단한 물질이다. 입자에 두들겨 맞더라도 탄소보다 오래 버틴다. 1억도를 버티는 시간이 종전보다 오래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윤시우 핵융합연구원 부원장은 “7월 말 텅스텐 작업을 끝내고 연말에는 50초 돌파에 도전한다. 50초 돌파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종 목표는 300초지만 진짜 고비는 50~100초 구간이다. 100초까지는 기술적 난관이 많아 다른 영역이란 설명이다. 윤 부원장은 “100초를 넘어서면 기술적 난관은 거의 극복한 것이다. 100~300초는 100초 도달까지 해결해온 문제들이 완전히 해소됐는지 2~3배 시간을 들여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안정적으로 300초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는 24시간 핵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전력 생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3일 ‘제18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개최하고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생산 실증로 기본개념’을 심의·의결했다. 실증로는 핵융합 전력생산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타당한지 입증하는 핵융합로를 말한다. 핵융합 발전 상용화 직전 단계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실증로 설계에 착수, 오는 2035년까지 실증로 설계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핵융합 상용화 시점은 2050년대다.
대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