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동결은 위기의 역설… 이창용 “인상 종료 아니다”

입력 2023-02-23 11:54 수정 2023-02-23 13:34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세계 중앙은행들보다 선제적으로 인상해 온 기준금리를 1년5개월 만에 동결한 결정은 우리 경제에 놓인 위기의 역설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4분기부터 수출·소비 지표의 악화를 확인하며 후퇴를 시작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억제보다 고금리에 따른 경기 둔화를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서 잠시 물러섰다.

한은 금통위는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현행 연 3.5%인 기준금리를 유지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를 조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8월 26일 회의부터 지난달 13일까지 ‘베이비스텝’(0.25% 포인트)과 ‘빅스텝’(0.5% 포인트)을 밟으며 금리를 현행 3.5%까지 끌어올린 지 1년5개월 만에 동결을 택했다. 유례없던 7회 연속(지난해 4·5·7·8·10·11월‧올해 1월) 금리 인상도 끊어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만 해도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해 3월에야 금리를 올려 한은보다 긴축에 늦었다. 하지만 연준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차기인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베이비스텝’ 이상의 금리 인상이 유력하다. 미국의 현행 기준금리는 4.5~4.75%. 0.5% 포인트만 더 올라가도 미국의 기준금리는 하단까지 5%대에 진입한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은 우리 경제의 둔화를 우려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우리 경제는 10분기 만에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한은은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직전 분기 대비 속보치가 –0.4%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마이너스 분기 성장률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던 2020년 2분기에 –3.0%로 기록된 뒤 10분기, 기간으로 2년6개월 만의 일이다. 고물가·고금리 국면에서 수출 둔화와 소비 위축이 성장률 후퇴로 이어졌다.

경상수지는 지난해 12월 26억8000만 달러(약 3조3822억원) 흑자를 가까스로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의 수출 실적이 악화돼 상품수지는 3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냈다. 지난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335억49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3% 줄었다. 지금의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전년 동월 대비치에서 5개월 연속 수출 감소를 이어가게 된다.

한은은 이날 동결한 기준금리의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연중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여건 불확실성도 높아 기준금리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면서도 “이번 조치가 금리 인상 기조의 종료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이후 금통위 회의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이번에 동결한 것은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지난해는 이례적으로 물가가 급등해 매회 올렸지만, 그전까지는 금리를 올린 뒤 시간을 두고 추가 인상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날 결정을 이런 과거의 일반적 방식으로 돌아간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