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무등산에 오를 수 없나요?’
올해 첫 무등산 정상 개방을 앞두고 외국인 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다음 달 무등산 꼭대기인 서석대 주상절리와 지왕봉, 인왕봉 개방 때 외국인 출입이 막히자 유학생과 이주노동자는 물론 광주시민 등이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위원회 평가 결과 ‘그린카드’ 발급을 자축하고 3월 3일 국립공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무등산 정상 개방 행사를 다음 달 4일 열기로 했다.
시는 이번 행사에서 정상 탐방객들에게 기념품을 증정하고 캐릭터 인형과 기념사진 촬영,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준비과정을 담은 사진전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갖는다.
신분증을 지참한 이들에게 전면 개방되는 정상 코스는 서석대 주상절리에서 주둔 중인 군부대 후문을 통과해 지왕봉, 인왕봉을 관람하고 부대 정문으로 나오는 0.9㎞ 구간이다.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하지만 군사시설 구역이라는 이유로 내국인만 개방 행사에 참여하도록 자격을 제한해 국제화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노동자들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에 산다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외국인 차별’에 볼멘소리다.
전남대 지질학과에 재학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의 한 유학생은 “친구들이랑 가끔 등산을 가는 데 무등산 정상 개방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며 “외국인이라고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의 반응도 개운치 않다. 대다수 시민은 “무등산은 아무런 등급이나 차등이 없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국인도 허용하는 게 온당하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더 나아가 진정서를 낸 시민도 있다. 문길주씨는 22일 강기정 광주시장을 피진정인으로 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에 제출했다. 문씨는 진정서에서 “현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하거나 이를 차별하는 규정이 없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광주시는 출입 제한 근거로 공군 보안규정을 제시했지만 궁색한 변명에 그치고 있다. 외국인이 군사시설 구역에 출입하려면 반드시 한 달 이전 신청을 하고 해당 부대 지휘관 승인절차를 거쳐 외국인 접촉보고서 작성 등 보안대책을 수립한 뒤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는 군부대와 협의 과정에서 “수만 명의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행사에 외국인을 특정해 모집하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답변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부대가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 등으로 보안을 강화하는 시점인 점을 감안해 외국인 군사시설 출입에 난색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시는 국립공원의 날에 맞춰 이번 개방행사를 추진하다 보니 외국인 참여자를 모집하고 승인절차를 거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 외국인을 차별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시는 오는 9월 다음 개방행사 때는 사전 절차만 제대로 밟으면 외국인도 무등산 정상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남도립공원에서 2013년 3월 국내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무등산 정상은 1966년 12월부터 공군부대 방공포대가 주둔 중이다. 그동안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지만, 광주시와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방부가 협의 끝에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상시 개방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해 12월 공군 제1 미사일 방어여단, 국립공원공단과 ‘무등산 정상 상시개방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어 ‘무등산을 시민의 품으로 전담팀(TF)’을 꾸리고 상시개방을 위한 군부대 이전 등 향후 일정을 논의 중이다.
무등산은 광주·전남의 진산(鎭山)이자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다. 해발 1187m의 정상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석대 등 하늘을 향해 치솟은 수직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사계절 생태 경관이 아름다운 데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청정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 국립공원 승격 이후 전체면적은 30㎢에서 75㎢로 2.5배 정도 늘어났다.
광주시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2011년 처음 일시 개방된 무등산 정상은 이후 10여 년간 꽃피는 봄철과 단풍시즌인 가을철 등 연간 2차례씩과 시민의 날 등을 포함해 그동안 25차례 탐방객 출입이 허용돼 47만여 명이 다녀갔다.
이곳에서는 현재 상시 개방에 대비해 탐방로 정비와 함께 국립공원계획과 국가문화재 변경허가 등 행정절차와 함께 군부대 철책 이설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위원회가 무등산을 둘러싼 전남·담양·화순 등 인근 지자체와의 원활한 협력체계 구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동아시아 플랫폼 건립 추진 등을 높이 평가한 뒤 그린카드를 발부함에 따라 2월 말 ‘세계지질공원 재인증’ 획득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무등산 정상을 온전히 시민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후속 절차와 군부대 이전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9월 개방 때부터는 외국인 차별 논란이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