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불 끄다 발견한 마약… 법원 “위법수집증거 아냐”

입력 2023-02-22 15:56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5000만원이 넘는 다량의 마약을 친구에게 맡겨 은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30대 남성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증거는 친구 집에 난 불을 진화하던 소방관들이 발견해 경찰에 알리면서 확보됐다. 영장 없이 압수수색해 얻은 증거를 적법한 증거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는데 재판부는 위법 수집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노호성)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최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인천 남동구에서 텔레그램으로 접촉한 마약 판매상에게 현금 4000만원을 주고 케타민 850.28g를 사들인 뒤 이를 친구 B씨에게 맡겼다. 케타민은 마취제의 일종으로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성범죄에 악용돼 ‘클럽 마약’ ‘버닝썬 마약’으로도 불린다.

B씨는 건네받은 케타민을 자택인 서울 강남구 빌라에 보관했는데 지난해 8월 집에 불이 났다.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 후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집을 조사하다 안방 화장대 위에서 흰색 가루가 묻은 지퍼백과 빨대 등 마약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현장에 함께 있던 경찰들에게 알렸다. 경찰은 곧바로 현장을 추가 수색해 화장대 서랍 안쪽 등지에서 케타민 850.28g을 찾아내 압수했다.

A씨 변호인은 재판에서 “B씨 주거지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해 마약 증거가 수집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위법수집된 증거이기에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방관들의 화재 원인 조사 중 B씨 지인들이 찾아와 현장에 진입하려고 한 정황 등을 종합하면 압수수색의 긴급성이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 등에 의한 증거 은닉과 폐기 위험성이 있는 상황이기에 사전영장 없이 긴급 압수수색이 가능한 사례로 판단한 것이다.

마약류 불법 거래액이 5000만원을 넘길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가중 처벌 조항이 적용되는데, A씨가 취득한 케타민을 5000만원 이상으로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A씨 변호인은 케타민 취급 회사로부터 케타민 1g당 1만2000원이라는 사실조회 회신을 받았고 재판부에 이를 제출하며 “A씨 취득 케타민이 5000만원 이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대검 마약과 ‘마약류 월간동향’ 문건에 수록된 마약류 암거래 가격표를 근거로 A씨 취득 케타민의 시가를 1g당 6만5000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 취급 사례는 암암리에 거래되는 케타민의 가격에 의해 정해야 한다”며 “A씨 취득 케타민 가액은 5000만원 이상이라고 판단함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대량 마약 사범에 해당돼 그 죄책이 무거우므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