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1970년대 ‘조총련 간첩 조작 사건’ 재심 권고

입력 2023-02-21 14:02
한씨의 공소장 표지 및 형사사건부. 진실화해위 제공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4일 열린 제52차 위원회에서 1970년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재심을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사건은 제주도의 한 중학교 서무주임으로 근무하던 고(故) 한모씨와 이 학교 교장 이모씨가 조총련계와 연계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이다.

한씨와 이씨는 조총련계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장관사 신축비용 명목으로 63만원을 받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확정받았다. 한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이 확정됐다. 이씨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확정받았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한씨와 이씨는 1970년 10월 8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10월 9일 중부경찰서에 인계되기 전까지 임의동행 형태로 연행돼 호텔과 모텔, 경찰서 보호실, 취조실, 여관 등을 수시로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이 과정에서 불법감금 상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의 수사기록에는 한씨 등이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술한 부분이 발견됐다. 진실화해위는 수사관들이 가혹 행위를 숨기기 위한 근거를 남겼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이씨는 항소이유서에서 ‘전기기구를 이용한 가혹 행위가 시작돼 정신이 마비되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한씨와 함께 근무한 한 참고인은 ‘워낙 고문이 심해서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아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한씨의 전언을 진술했다.

하지만 한씨 등과 연락을 주고받은 인물들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소속이거나 조총련계와 관계를 끊은 이들이었다.

당시 경찰도 뒤늦게 이를 확인한 뒤 1심 판결 약 3주 전인 1971년 2월 4일 검찰에 ‘사실조사 결과보고’ 문건을 보냈으나 법원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한씨는 1989년 사망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한씨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체포·가혹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재심 등의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불법 구금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육군 장교 방모씨와 박모씨 사건도 진실 규명 결정했다.

방씨는 징역 15년을, 박씨는 무기징역을 각각 확정받았다. 특히 방씨는 2심 판결로 형이 확정되는 등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진실화해위는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와 국가정보원이 해당 장교들과 유족에게 재심을 비롯한 피해 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