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써.”(관리팀장)
“해고하는 건가요?”(직원)
“맞으니까 사표 쓰고 가.”(관리팀장)
“...”(직원)
“해고하는 건가요?”(직원)
“맞으니까 사표 쓰고 가.”(관리팀장)
“...”(직원)
직장 상사가 이처럼 반복해서 ‘사표’를 언급했다면 해고로 볼 수 있을까. 하급심은 해당 상사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화를 내다 튀어나온 말이라며 “해고로 볼 수 없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해고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사표 쓰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됐고 이에 출근하지 않은 직원을 방치했다면 ‘묵시적 해고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버스기사 A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은 판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월 한 전세버스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출퇴근 전세버스 운행을 맡았는데, 두 차례 무단으로 버스 운행을 하지 않았다.
이에 회사 관리팀장은 A씨를 불러 “저기 가, 사표 쓰고” “사표 쓰고, 퇴근하고, 통장 계좌번호 넣어주고 가요”라고 말했다. A씨가 “해고시키는거요 지금?”이라고 묻자 팀장은 “응, 그만두라니까, 사표 쓰고 가라니까. 사표 쓰고 가요. 당신은 회사에 도움은 안 주고 피해를 줬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팀장은 “사표 쓰라”는 말을 7번 반복했다.
A씨는 이튿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이어 그해 5월 1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A씨 신청을 기각했다.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A씨가 출근하지 않은 기간 동안 별 얘기가 없던 회사 측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해고한 사실이 없으니 복귀하고자 한다면 즉시 근무할 수 있다”며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 근무 독촉’을 통보했다. 회사 측은 “근무태도를 질책하며 출근하지 말라고 했지만, ‘성실히 근무해 달라’는 뜻이었고, 해고의 의미가 아니었다”며 “서면으로 해고 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표이사가 승낙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법원 문을 두드렸지만 하급심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은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사표 쓰라”는 발언은 화를 내다 우발적으로 나온 말이라고 봤다.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반전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A씨와 관리팀장이 말다툼을 벌인 당일 있었던 사건에 주목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관리팀장은 이날 A씨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반응이 없자 관리팀장은 관리상무를 데리고 A씨를 찾아가 열쇠를 직접 회수했다. 언쟁은 이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대법원은 “원고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그로부터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원고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해고는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인력 부족으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3개월 동안 A씨의 결근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이 제기되자 비로소 출근을 독촉한 점 등을 감안하면, 대표이사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서면으로 해고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다’는 회사 주장에 대해서도 “서면 통지는 해고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의사 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