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캐디여도 상사의 괴롭힘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골프장 운영 주체인 대학 법인에도 사용자로서 감독 책임을 물었다.
19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재판장 전기흥)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다 2020년 9월 극단적 선택을 한 배모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15일 판결했다. 앞서 배씨 유족은 상사 A씨와 골프장 운영 주체인 건국대 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배씨는 2019년 7월부터 경기도 파주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일명 ‘캡틴’으로 불리는 관리자 A씨에게 폭언과 모욕을 당했다. A씨는 경기 중 무전으로 배씨에게 모욕적인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쏟아냈다. 2020년 8월 배씨가 A씨에 대한 항의 글을 인터넷 카페에 남겼지만, 건국대 법인은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해당 글을 삭제한 후 배씨를 탈퇴시켰다. 배씨는 결국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
배씨의 유족은 고용노동부에 A씨와 건국대 법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고용부는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라며 “해당 규정(직장 내 괴롭힘)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을 때도 배씨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청구도 거절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와 실제 사용자인 건국대 법인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는 캐디들을 총괄·관리하는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고 판단했다. 또 건국대 법인에 대해서는 “A씨의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위탁계약 노동자 등은 직장 갑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근로기준법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조항에 ‘원청(도급인)’을 추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