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부모 자격과 구하라법

입력 2023-02-19 19:06

“남편이 죽은 것도 서러운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부모가 나타나서 상속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네요. 키우지도 않은 시부모에게 남편이 남긴 재산을 나눠줘야 하는 게 우리나라 법인가요?”

그녀는 20년 전에 남편과 혼인했다. 시부모는 남편이 두 살이 될 무렵에 이혼했다. 이혼 후 남편은 친조모에게 전적으로 맡겨졌다. 친부는 가끔 명절 때 나타나서 친조모에게 양육비를 드리기는커녕 돈을 뜯어가기 일쑤였고, 친모는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곧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돈을 모았고, 그녀와 결혼할 때쯤에는 작은 가게를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20년 동안 그녀와 남편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소시민의 소소한 삶을 살았다. 단 하나의 아쉬움은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점이겠으나, 부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행은 갑작스럽게 왔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경을 헤매다 결국 죽은 것이다. 남편의 장례는 그녀의 친정 식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치를 수 있었다.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는 시부모는 당연히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상속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모든 재산과 부채가 남편 명의로 되어 있지만 그녀는 그녀가 상속을 받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었다. 상속 등기를 하기 위해 법무사와 상담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현재 상속법상 자식이 없는 경우 배우자와 부모가 공동상속인이 되므로 시부모와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해야 등기가 된단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결국,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부모를 찾아 나섰다. 어렵게 찾은 시부모는 각자 사실혼 배우자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사실과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해서 상속재산을 정리해야 한다고 알렸다. 그러자 시부모는 일말의 슬픔도 없이 자신들이 받을 상속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기가 막혔지만 대강 파악한 재산과 부채 내용을 알려줬다. 그 후부터 시부모는 수시로 전화해서 그녀가 혹시 숨긴 재산은 없는지를 묻더니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2019년 11월 24일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1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했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구하라씨의 오빠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구씨 친부에게 60%,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구씨의 오빠는 “어린 자녀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상속재산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을 청원했고, 이를 계기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소위 ‘구하라법’이 발의됐다. 벌써 3년이 넘게 흘렀으나 ‘구하라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과연 시부모가 부모의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의 생부모인지라 그녀는 모든 고통을 감수하며 시부모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생각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