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 시절 시 산하 공공기관·공기업 임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종용했다는 이른바 ‘기관장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오 전 시장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권에 따라 하루아침에 직위를 상실하게 하는 이른바 ‘물갈이’ 인사를 두고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재판장 김태업)는 17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오 전 부산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오 전 시장은 이 사건과 별도로 2021년 6월 부하직원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 중으로, 이날 하늘색 수의를 입고 재판에 출석했다.
또 함께 기소된 박모 전 정책특별보좌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신모 전 대외협력보좌관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들은 오 시장 취임 초기인 2018년 8월부터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 25곳의 임원·임원급 등 65개 직위를 전면 교체하고자 시장 취임 전 일괄 사직서 제출을 요구해 2019년 1월까지 임기가 남은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 6곳의 임직원 9명에게 사직서 제출을 종용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앞선 결심공판에서 부산시설공단, 부산복지개발원, 부산여성가족개발원, 부산경제진흥원, 부산테크노파크, 벡스코 등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 6곳의 임직원들이 사직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사직서 제출을 압박해 일방적으로 받아냈다며 재판부에 엄벌을 요구했다.
지금껏 재판에서 오 전 시장은 이러한 혐의를 부인해 왔다.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은 이 사건과 관련해 두 보좌관과의 공동 범행에 대한 인과관계가 없으며, 관련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 왔었다.
반면, 박 전 특보와 신 전 보좌관은 공소사실을 첫 공판부터 모두 인정했다.
이에 재판부는 박 전 보좌관과 신 전 보좌관으로부터 공공기관 임직원의 수리 절차를 보고받은 정황 등을 고려했을 때 오 전 시장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 전 시장이 전반적인 지위에서 박 전 보좌관과 신 전 보조관에 대한 지배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데 역할 분담이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산경제진흥원, 부산테크노파크 소속 임직원에 대한 혐의에 관해서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직서를 징구하고 나아가 의사에 반해 사직서를 수리해 하루아침에 직위를 상실하게 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사라져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보좌관과 신 전 보좌관 역시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 데 일조해야 했는데도 이 사건 범행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범죄가 사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직서를 일괄적으로 받는 등 행위는 부산 시장으로서 인사 적체 해소, 선거 공약을 이행하는 방향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