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지시로 개인 특허권 포기 강요”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

입력 2023-02-16 17:31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하회애위에서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가 개입해 개인의 염색기술 특허권 포기를 강요한 사실이 51년 만에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위원회를 열고 ‘중앙정보부 소 취하 강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이 사건은 1972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국가기관이 개입해 고(故) 신모씨에게 특허건 관련 소 취하를 강요한 사건이다. 신씨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일명 ‘홀치기’의 발명자로, 1972년 5월 18일 기술을 모방한 다른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5억2000여만원을 받기로 결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판결 2주 뒤 신씨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끌려가 구금된 채 고문·가혹 행위를 당하며 ‘손배소를 취하하고 특허권을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이 배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각하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에는 “홀치기 제품에 대한 특허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며 상공부와 법무부에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적혀 있었다. 신씨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말라는 취지다.

신씨는 특허권을 포기하고 소를 취하했지만, 특허권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이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확정받았다. 신씨에게 특허권을 내준 상공부 특허 담당 공무원 4명도 비위자로 몰려 직위해제됐다. 신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다음 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신씨는 생전인 2006년 1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당시엔 중앙정보부 역할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어 각하됐다. 이후 신씨의 아들이 2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면서 조사가 이뤄졌다. 진실화해위는 “수사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불법체포, 불법수사를 하고 강요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국가는 재심을 통해 피해자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1961년 ‘5·16군사정변 중 민간인 총상 사건’에 대해서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1961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근처 다방에서 근무하던 조모씨는 총소리를 듣고 놀라서 거리에 나왔다가 군인들에게 저항 세력으로 오해받아 무릎에 총상을 입었다. 조씨는 장애 4급 판정을 받았으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이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민간인이던 피해자가 어떤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군인으로부터 총상을 입었다”며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1948년 고(故) 심모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후 미군정 포고 제2호 법령에 따라 징역형을 받은 ‘미군정 포고 제2호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위법 판단을 내리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노력을 하라고 권고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