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을 놓고 “파업 만능주의로 인해 사회적인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16일 지적했다.
이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법치주의와 충돌되는 입법으로 향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더불어민주당(4명)과 정의당(1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전날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처리했다.
쟁의행위 탄압을 목적으로 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고, 간접고용 노동자 교섭권을 보장하는 게 이 개정안 핵심 내용이다.
국민의힘(3명)이 거세게 반발했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문재인정부 때 국정과제로 설정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뤘고 (민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위헌 소지와 다른 법률과 충돌 소지 때문에 결국 해결되지 않았던 법”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지난 5년간 노란봉투법 입법을 시도하지 않다가 야당이 되자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그러면서 “국회 요구로 고용노동부가 손해배상·가압류 관련 151건을 분석한 결과 주로 특정 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대기업 9개 노조에서 발생한 폭력을 동반한 직장점거 등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이 청구되고 가압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합원에 대해선 엄격히 손해배상 책임이 제한되고 사용자의 불법에 이르게 된 배경 경위도 고려됐다”며 “법을 지키고 수단과 절차, 목적이 정당하면 민형사상 면책이 되기에 손해배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노란봉투법이 발효되면 청년 등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장관은 “사법절차를 통해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법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 힘으로 파업하는 게 가능하게 해놨다”면서 “결국 피해는 미래 세대인 청년과 노조가 없는 다수의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개정안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데 대해 “도급인은 하청 근로자 근로 조건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민법상 기본 원리와 충돌한다”며 “‘실질적 영향력’ 개념도 굉장히 모호해 법적 안정성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노조법 2조 사용자 정의 조항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이 장관은 그러면서 “지금 노사 관계가 안정돼 가는데 다시 실력 행사와 힘에 의존한 노사 관계가 나타나 대립·갈등으로 갈 우려가 크다”며 “국회는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해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민주당은 오는 21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긴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60일 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가 끝나지 않은 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해당 상임위에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직회부’ 방식으로 안건을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 장관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가정적 상황을 전제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일단 최선을 다해 이 법이 가진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알리고 우려를 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3대 개혁 과제로 내건 노동 개혁 과제도 소개했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은 70년 전 획일·경직적인 ‘공장법 체계’와 ‘87년 노동 체계’를 벗어나야 한다”며 “현실과 괴리되고 모호한 법 규정은 편법을 낳고 사법 리스크를 초래해 노사 갈등과 경영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장관은 특히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이 가장 시급한 노동 개혁 과제”라면서 “‘현대판 반상 차별’이라 불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둬서는 청년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장관은 임금체계 개편 논의차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에 민주노총 출신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참여한 것과 관련해 “훌륭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본인이 욕을 먹더라도 1500만 노동자, 취약한 계층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게 참 좋은 생각”이라며 “평생 노동운동을 하면서 약자를 보호했던 그런 대안을 제시해 좋은 결과를 도출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