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연상 남편 살해 20대, 2심서 감형…“남편에게 받은 모욕 참작”

입력 2023-02-16 14:28

결혼 전 약속을 지키지 않는 40대 남편과 돈 문제로 갈등을 빚다 흉기로 살해한 2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최수환)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2)의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남편 B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혼인 신고를 한 지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술에 취해 누워있던 피해자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망 여부를 확인해가며 같은 행동을 반복해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죄질이 나쁘다”고 질타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자라온 가정환경 등을 참작해 형을 감형했다. A씨는 부친이 횡령 범죄, 사업 실패 등의 문제로 도주하면서 모친, 남동생과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힘겨운 생활을 했다. 2013년부터는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졌다. 모친은 A씨를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해 긴급분리 조치가 이뤄졌고 중·고교 시절 남동생과 일정한 주거지 없이 여러 시설을 전전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본인이 원하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온갖 일을 하며 모친과 남동생의 생활비를 댔다.

재판부는 “부모의 방임 또는 학대로 정서적·경제적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음에도 불우한 환경을 딛고 괜찮은 사회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했다”며 “품행장애 등 진단을 받은 남동생을 보살피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혼인신고 전 A씨에게 고가의 예물·예금·자동차·주택 등을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재판부는 “B씨는 A씨가 감내하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들을 했고, 강압적이고 과도한 요구들을 했다”며 “A씨는 B씨와의 종속적 관계에서 비롯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살인 범행 전날에도 두 사람은 돈 문제로 다퉜고, B씨는 A씨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후 A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재판부는 “A씨는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탓에 다소 허황된 B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혼인신고를 했다”며 “약 2개월간 B씨로부터 받은 모욕과 성적수치심, 기망행위에 대한 분노감정이 폭발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됐고 그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