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J는 공부를 아직 스스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가 옆에서 봐주고 있지만, 집중을 하지 않는다. 딴짓을 많이 해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점점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
부모는 ‘화를 내지 말아야지’ ‘아이에게 이런 일로 화내는 것은 못난 부모나 할 짓이지’ 하며 화를 억누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설득으로 시작해 잔소리, 훈계가 이어지고 나중엔 심한 소리로 협박하거나 화가 폭발한다. 아이를 위한 말이지만 반복되니 아이에게도 상처가 됐을 듯하다. 하지만 말은 이미 내뱉어 버렸고 화는 폭발해버린 후다. 부모는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나고 자책감에 빠져 마음이 울적하다. ‘공부 봐주는 걸 포기하고 내버려 둬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녀의 공부를 봐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개는 화를 내고 야단치는 것으로 끝나고 아이는 부모와 같이 공부하는 걸 거부하게 된다. 이때 잘 알려진 대로 아이에 대한 ’수용적인 양육 태도’가 중요하지만,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부모 자신에 대한 ‘수용’은 호기심을 갖고 자신의 생각, 감각,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판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거나 인정하지 않고 감정을 단지 억압하고 비판한다면 ‘비수용적’이라 할 수 있다. 수용은 해도 원래의 목표를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면 소극적인 수용이고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거기에 그대로 있도록 허락하면서도 원래의 목표, 가치에 다가가는 행동을 한다면 ‘적극적 수용’이다. 이를 마음 챙김 수용이라고도 한다.
J의 부모는 자신에 대해 ‘비수용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지 않은 채 외면하고 억압하고 있다가 폭발한다. 화를 낸 자신을 판단해 자책하고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됐다. ‘자꾸 야단치고 화를 내게 되니 공부 습관 봐주는 것을 포기할까’ 하는 것도 소극적 수용이다. 아이를 수용하려면 부모는 먼저 자신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외면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내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감정을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에 아이도 ‘수용’하기 힘들다.
자신과 아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 아버지의 내면을 소개해 보겠다.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이해를 못 할 때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컥함, 아이의 주의가 딴 곳으로 갈 때 두고 볼 수 없는 내 안의 성급함을 알아차린다. 아들의 주의가 시시각각 어디로 향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관찰한다. 어려운 문제는 잘 풀면서 쉬운 문제에서 오히려 실수하며 지우개 밥을 비비고 뭉치고 볼펜을 흔들며 필통을 뒤지고 시간을 물어보고 주의가 산만해지는구나 알아차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지우개를 슬며시 옮겨주고 손에서 볼펜을 부드럽게 잡아서 옮겨주고 엉뚱한 얘기를 하면 ‘그래, 마저 풀어보자’로만 간단히 대답한다.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지 않아 자극을 줄여주는 식으로 행동한다. 숙제를 마치고 나면 하기 전의 짜증 나는 느낌, 해야 할 분량을 뒤적거릴 때의 답답함, 숙제하는 중간 몸의 찌뿌둥함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치고 났을 때의 상쾌함, 새로이 알게 된 부분에 대한 즐거움, 더 궁금한 점이 생긴 호기심, 머리의 기분 좋은 무거움, 눈꺼풀이 내려앉는 느낌 등을 같이 나눈다.
이렇게 하면 아이도 차츰 숙제하기 전의 불쾌한 생각, 감정 상태, 신체적인 느낌과 숙제를 마치고 난 후의 상쾌한 느낌을 비교해 인식한다. 몸으로 성취감을 알게 되고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부모 자신도 자신의 상태, 감정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감정과 투쟁을 내려놓아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목적을 이룬다. 설사 중간에 삐끗해 완벽하게 마치지 못했더라도 자신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아 자책감에 빠지지 않고 다음 날 다시 도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려면 부모도 평소에 자신의 상태를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의 삶뿐만 아니라 부모의 삶도 달라진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