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빅딜’…고심하는 EU에 미국·일본 심사까지 남아

입력 2023-02-15 06:00

2020년 시작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3년째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슬롯(특정 시간에 활주로 등 공항 시설을 이용할 권리), 운수권 이전 등을 조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았지만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의 승인이 요원하다. 이들 중 한 곳이라도 승인하지 않으면 통합 항공사 출범은 불가능하다.

각국은 합병으로 인한 항공업계 경쟁 제한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종 업계 내에서 이뤄지는 기업결합인 만큼 독과점 등이 시장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승인 결정을 유예한 미국과 영국도 이같은 경쟁 제한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이은 시정안 요청…슬롯·운수권 반납↑ ‘메가캐리어’ 효과 ↓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하며 국제선 슬롯과 운수권 반납을 의무화하는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좌석 수 축소 금지, 서비스 질 유지 등도 명령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한 날로부터 10년간 이같은 시정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사실상 시장경쟁 체계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한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쳐지면 통합 항공사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의 48.9%를 점유하게 된다. 독점 운항하는 국제선 노선이 10개, 60% 이상 운항하는 노선이 29개에 이른다. 특히 미국(5개), 유럽(6개) 노선의 경우 경쟁 제한성이 더욱 높다. 통합 항공사의 미국 노선 점유율은 78~100%, 유럽 노선 점유율은 69~100%다.


해외 경쟁 당국도 합병으로 인한 경쟁 제한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 필수신고국가 중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은 EU, 미국, 일본 등 3개국이다. 터키, 대만, 베트남, 중국, 태국 등의 필수신고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필리핀 등 임의신고국은 기업결합심사를 마쳤다.

올해 안에 합병을 마무리하려던 대한항공의 목표는 EU의 2단계 심사 가능성이 커지며 제동이 걸렸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13일 EU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로이터 통신은 EU 집행위원회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2단계 심사를 17일 발표할 것이라고 지난 10일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가 2단계 심사에 들어가는 경우 대한항공의 추가 슬롯, 운송권 반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EU 집행위원회가 2단계 심사를 한다는 것은 현재 대한항공이 제시한 방안으로는 경쟁 제한 해소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2단계 심사가 시작되면 130일 이내에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기업결합승인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8월 미국 법무부의 요청대로 슬롯 반납 내용이 담긴 시정안을 제출해 심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추가 심사가 이어진 것이다. 이 또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복으로 취항하는 미국 노선의 독과점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일본 경쟁 당국은 심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필수신고국 중 하나인 중국은 대한항공이 시정안을 제시한 후에야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중국 시장총국은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했다. 대한항공은 이를 위해 공정위가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5개 노선 외에 서울~베이징·상하이·창사·톈진 등 4개 노선을 더해 총 9개 노선의 슬롯 이전을 지원하는 시정안을 제출했다.


임의신고국인 영국도 지난해 11월 대한항공에 시정안을 요구했다. 영국 시장경쟁청(CMA)은 합병 이후 항공권 가격 인상과 서비스 질 하락 등이 예상된다며 독과점을 해소할 시정안을 요청했다. 대한항공은 영국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의 인천~런던 신규 취항 내용을 담은 시정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CMA는 늦어도 3월 23일까지 승인 여부를 확정하기로 했다.

다수 경쟁 당국이 기업결합 불승인 대신 시정안을 요청한 만큼 결론적으로는 ‘빅딜’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승인 과정에서 슬롯, 운수권 반납이 잦아지면 기대했던 ‘메가캐리어’ 탄생 효과가 작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1위와 2위가 합쳐지는 빅딜이 아니라 대한항공의 사업 확장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추가적인 슬롯, 운수권 반납이 이어지면 기업결합 효과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화-대우조선해양 빅딜은 아직 출발선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이제 막 발을 뗐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2월 16일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49.3%에 해당하는 신주 발행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공정위는 계약 체결 3일 후인 지난해 12월 19일 기업결합 신고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는 신고 후 30~120일 이내에 이뤄진다. 오는 4월 23일까지 심사가 마무리되어야 하지만 자료 제출일은 심사일에서 제외되는 만큼 기한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 외 EU, 튀르키예, 영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특히 지난해 EU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허해 빅딜이 무산된 만큼 이번 기업결합의 EU 승인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되면 방산,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의 한화디펜스, 항공·우주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바다의 대우조선해양이 합쳐져 육·해·공을 아우르는 방산 계열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다. 정부 관계자는 “동종업계에서 이뤄지는 결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다만 수직결합이 이뤄지는 부분이 있어 이 또한 경쟁 제한성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