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나 애인과 동거하면서도 왜 혼인신고를 하지 않나요. 이렇게 물은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2.2%가 ‘주택 마련과 경제적 문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이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선 신혼부부가 가족계획을 세울 때 우선 고려하는 부분으로 ‘안정적 주거환경’이 40.6%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가계경제 및 고용상태(22.8%)와 자녀 양육·교육비(22.1%)였다. 결혼이든 출산이든 돈 문제가 늘 발목을 잡는데 그중에서도 살 곳(집)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벽이라는 얘기다. 이 부담은 청년세대에 더 무겁다. 국토부 조사에서 “임대료와 대출금이 부담된다”는 청년, 신혼부부 가구 비중은 각각 74.8%, 76.3%로 일반가구(63.9%)를 크게 웃돌았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연구원 김시연 부연구위원은 “청년들이 마주하는 고용시장 불안과 경제적 부담은 향후 결혼과 출산 이후 부담하게 되는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져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간접적 원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택 마련에 대한 경제적 부담 등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출산을 연기 또는 포기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라며 “이 현상을 개인의 사적영역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위해서는 앞서 이런 문제를 겪으며 청년층에 대한 주거 지원 정책을 펴온 나라들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관련 연구를 진행해 국내에 적용 가능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집세 보전해주고 취업도 연계
일본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주거에 대한 지원과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공공임대주택 지원 정책은 대도시보다는 인구 감소로 문제를 겪는 지방이 적극적이다. 홋카이도 미카사시는 주택 임대료 일부를 그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보전해준다. 주거 부담을 줄여주면서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고안한 정책이다. 현금으로 주면 청년들이 잠만 미카사에서 자고 대부분 시간은 다른 지역에서 보내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 있다. 수혜자는 상품권을 써야 임대료 상쇄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러려면 되도록 미카사에 머물며 생활해야 한다.한때 탄광산업으로 잘 나갔던 미카사는 면적 302.5㎢로 서울(605.2㎢)의 절반 크기인 땅에 현재 8000명 정도만 살고 있다. 2015년 인구조사에선 18개 마을이 ‘인구 0명’으로 집계됐다. 상당수 마을이 아무도 살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전입신고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유령마을’인 셈이다. 이러니 청년세대 유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미카사는 민간자금으로 임대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비용을 일부 대는 건설 지원을 병행한다. 또 단신세대(1인 가구)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임대료 지원 기간과 금액을 늘려주며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만화 ‘슬램덩크’ 배경지 가나가와현에 있는 항구도시 요코스카시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유거주지원제도를 시행 중이다. 요코스카는 인구 40만명에 달하는 비교적 큰 도시지만 지속적인 인구 감소에 위기감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초 44만명에 육박했고 2015년에도 41만명 정도였던 이 지역 인구는 지금 38만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요코스카는 학생들이 임대료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십시일반으로 빈 단독주택을 공유하려고 할 때 여러 비용을 지원한다. 초기 정착비용뿐만 아니라 입주 때 가전제품 따위를 사면서 발생하는 초기 비용 등을 항목별로 정해 폭넓게 지급한다.
일본은 일자리 상실 등으로 주거 불안이 우려되는 이들에게 6~9개월간 주택바우처를 지원하는 주택수당제도도 운영 중이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취업 프로그램과 연계한다. 일한 능력과 의욕이 있는 청년이 주거와 일자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개념이다. 다른 도시에서 전입하거나 육아 중인 청년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방식으로도 인구 유입 촉진책을 펴고 있다. 한 예로 가나가와현 아츠키시는 새롭게 전입하든 이미 시내에 살든 아이를 키우는 청년이 집을 살 때 주택 취득비용 일부를 보조한다. 해당 가구 자녀 연령대가 중학생까지라 대상 범위가 넓다.
청년 맞춤형 주택 공급도
싱가포르도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주거 지원에 적극적이다. 일반 수요자에게 토지임대부 또는 환매조건부로 분양주택을 공급하는데 청년도 대상에 포함된다. 이미 국민 80% 이상이 토지임대부주택이나 환매조건부주택에 살고 있다. 신혼부부에게는 공공주택 우선권을 주고 집값의 80%까지 대출해준다.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어린 자녀가 있을 땐 신규 주택을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한국과 다른 부분은 ‘가족 공동체 보호’ 명목으로 부모나 조부모 집에서 2㎞ 이내인 주택에 대해서는 근거리 거주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준다는 점이다.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홍콩은 셰어하우스 이용 청년들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정부가 기부받은 땅에 ‘청년숙사(靑年宿舍)’라는 청년주택단지를 지어 기준 소득 75% 이하 청년에게 시세 60% 수준 임대료로 제공한다. 셰어하우스와 비슷한 공용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최장 5년간 거주할 수 있다. 홍콩은 학생 신분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자격을 잃을까 봐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은 주거공간지원법에 따라 1인 가구 청년에게 우선적으로 사회주택(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기초사회보장 차원에서 18~27세 청년에게 거처 마련과 취업 알선, 난방비 보조 등을 연계해 지원한다. 지역별로는 뮌헨시가 1~2인 가구를 비롯한 소규모 가구를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거주 면적 축소, 설비 기준 완화로 원룸 공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회초년생과 저임금 노동자, 저소득가구를 포함한 1인 청년 가구가 주로 혜택을 본다.
함부르크시는 시내 및 기숙사 시설 내 1~2인 아파트, 주택 내 공동주거시설에 거주를 신청하는 학생에게 30년간 저금리 대출을 해준다. 경제 수준별로 임대료도 차등 지원한다. 학생과 직업교육 수련생을 위한 주거건물이나 기숙사를 짓는 건축주에게는 보조금 형식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건물 신축과 기존 건물 용도변경 및 확장도 허용한다.
미국은 청년을 포함해 집이 없는 저소득층(중위소득 80% 이하 무주택자)이 주택을 임차할 때 정부가 임대료 일부를 대신 내주는 주택바우처 제도를 운영 중이다. 바우처는 미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실제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은 도심과 상대적으로 멀거나 주변 커뮤니티가 취약한 곳이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가 많은 대가족이나 노령층 등은 이 바우처 제도로 적합한 주택을 찾는 데 제약이 있다.
“획기적·급진적 정책 시급”
김시연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를 보면 단순히 주택이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생애주기 측면에서 복합적·통합적 지원 제도가 시행 중”이라며 “청년가구를 위한 공공지원 민간분양주택제도 도입과 다양한 종류의 임대주택 공급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주요국의 청년 주거지원 정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청년 임대주택 유형으로 창업지원주택, 지역전략산업주택, 중소기업근로자 전용주택, 청년예술인 임대주택을 예로 들었다. 수도권 청년과 저소득층 주거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일자리 연계형 임대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일본·독일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는 정책이다.
김 연구위원은 “(청년층이) 높은 주택가격과 주거비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주택공급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기혼청년의 경우 가족수에 따른 차등적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동시 지원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그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최근 젊은층에 좀 더 기회를 주는 쪽으로 청약제도 등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출산율 감소가 복합적 사회 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획기적이고 급진적인 주거지원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